> 뉴스 > 교양
[시가있는하루] 거미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8.03.29  16:43:2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거미
                                                               김영승

월요일 저녁
거실에 스텐드를 켜 놓고
네모난 밥상에 앉아 글을 쓰는데

베란다엔 커다란 거미
엄지손가락 만한 왕거미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가 딱 멎어

연필꽂이로 쓰는 노란 컵을 뒤집어
펜들을 쏟고 급히
거미를 뒤집어 씌워

덮어

잡았다

그 밑으로 책받침을 끼워 넣어
컵을 바쳐 든 뒤
베란다 창문을 열고
화단으로 던져 주었더니
비호(飛虎)같이 기어 사라진다
죽이기는 싫었다

또 들어오면
잡아서 기를 것이다

10초도 안 되어 종료된 상황이다
10초의 섬광(閃光)


그런데
거미 한 마리가
불을 끄고 나갔다.


옛 친구와 술을 마셨다. 옛 연인은 집착이 많아서 싫었는데, 지금의 연인은 의심도 없고 집착도 없어서 사랑도 없어 보인다고, 친구는 내게 고민 상담을 했다.

다이어트 중이라며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친구에게 난 이렇게 말했다. “YO~ WOMAN! 그렇다면 너는 상대방이 사랑하면 사랑하고, 상대방이 안 사랑하면 안 사랑할 거냐?”

내가 술자리에서 맴도는 대화들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친구의 고민처럼 값싼 고민들이 무한REFILL 되어 금방 물려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들을 듣다 보면 결국, ‘난 속기 싫다’, ‘난 손해보기 싫다’, ‘난 상처받기 싫다’의 속셈이 LOVE의 탈을 쓰고 춤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랑 고백을 한다면 4월 1일에 하면 어떨까 하고. 상대방이 OK하면 진심이었다고 하고, 상대방이 NO하면 만우절 거짓말이었다고 하면 좋겠다고. 당시엔 기가 막힌 IDEA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엔 부끄러워졌다. 승낙을 얻으면 진심이 되고, 거절 당하면 거짓이 되는 PROPOSE라니. OOPS!

우리는 왜 가치 있는 고민을 하기 보다, 가치가 낮은 고민에 더 마음을 쓰고 공감을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금의 연인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대신에, “어떻게 하면 지금의 연인을 내 맘에 꼭 들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걸까?

내가 하는 이런 고민을 시속 화자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거실에 스텐드를 켜 놓고/네모난 밥상에 앉아/글을 쓰’며 가치 있는 고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OH MY GOD! 도저히 방법이 없어! 우린 한낱 이기적인 HUMEN이야!” 라며 한눈을 팔 때 거미를 보았을 것이다. 이 ‘커다란 거미’라도 잡아서 위안을 얻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눈 파는 동안 마음 속 불이 꺼져버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거미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고, 이 남자는 불 꺼진 방을 나가 옛 친구를 찾아가 연인에 대한 불만을 CONSULT받을 것이다. ‘월요일 저녁’을 지나 화요일 만우절이 되도록…. 다들 FUNNY 만우절 보내시고, 만우절 사랑고백은 피하시고, 가끔은 좀더 괜찮은 고민을 해보기 바란다. 인수위의 영어정책에 VERY 경의를 표하며 ENGLISH를 섞어서 썼다.

/ 김원국 (시인, 국문학과 05년도 졸업)

김원국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한림대 수시모집 경쟁률 5.09대 1로 ‘3년 만의 상승’
2
[보도] 2023학년도 국가장학금 신청, 재학생 1차 필수
3
[보도] 코앞으로 다가온 졸업, ‘유예 신청’ ‘심사료 납부’
4
[보도] 4차 동아리 대표자 회의로 ‘유종의 미’ 거둬
5
[보도] 겨울밤을 수놓은 하나의 목소리, ‘한림합창단 정기공연’
6
[보도] ‘창의적인 아이디어’ 캡스톤 경진대회 실시
7
[기획] 1년 만에 부활한 총학, 4곳서 연장투표도 진행돼…
8
[선거특집] “학우들의 선택에 부응하는 학생회가 되겠다”
9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1
10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2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