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시가있는하루] 아카시아 꽃
이현준 작가  |  skdaks@empa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8.05.16  20:27:2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아카시아 꽃

                                       - 이해인

          향기로 숲을 덮으며
          흰 노래로 날리는
          아카시아 꽃

          가시 돋친 가슴으로
          몸살을 하면서도

          꽃잎과 잎새는
          그토록
          부드럽게 피워냈구나

          내가 철이 없어
          너무 많이 엎질러 놓은
          젊은 날의 그리움이

          일제히 숲으로 들어가
          꽃이 된 것만 같은
          아카시아 꽃

미라, 내 친구의 이름이다. 내 기억 속에 13살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내 친구의 이름이다. 그녀의 성이 ‘김’이었는지, ‘이’였는지도 확실치 않지만 봄이 오고 아카시아가 피면 내 마음속에 그녀와의 기억이 아지랑이 피듯 피어난다. 아무렇게나 손 빗질 해놓은 엉클어진 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탓에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얼굴은 귀여운 데가 있어 은근히 그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나였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난 종종 그녀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곤했다. 수업 중에 그녀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몰래 의자에 묶어놓는다든가, 신발 뒷굽을 밟고 도망치기도 하고, 치마를 들추는 따위의 장난은 예사로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개구쟁이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그런 행동을 했던 걸 보면 어쩌면 나도 미라를 좋아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미라는 그럴 때 마다 종주먹을 들이대며 나를 위협하기도 하고 실제로 내 등이나 팔뚝을 여지없이 가격하고는 했다. 물론 난 아프지 않은 듯 두 손을 올리며 최홍만 선수의 포즈를 취하곤 했지만, 순간 그녀를 왈칵 안아보고 싶었던 감정이 나를 괴롭히곤 했었다.

6학년으로 올라오며 미라와 여전히 같은 반이 되었던 그해 봄, 난 아카시아 꽃송아리를 통째로 따다가 책상 밑에 두고는 했었다. 꽃을 뜯어내어 콧구멍 안에 넣고는 수업 내내 향긋한 숨을 내쉬고는 했었다. 친구들은 킥킥대며 웃었지만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 내 콧구멍 속 꽃놀이를 알리 만무했다. 그런 나의 행동에 미라는 늘 인상을 쓰며 쳐다보곤 했고, 그럴 때마다 난 고개를 살짝 들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놀리곤 했었다. 그렇게 아카시아가 시들어 가던 5월의 어느 날, 나는 학교 뒤 아카시아 숲의 외진 벤치에 혼자 앉아있는 미라를 보았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미라 옆에 앉으며 ‘야’ 소릴 질렀고, 순간 놀란 미라의 콧구멍에서 발사되는 작은 꽃송이들을 보았다.

이런…, 웃음이 나왔지만 난 숨을 골랐고, 미라도 민망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흐르던 침묵을 깬 건 나였다. 여긴 내 벤치니까 비켜! 나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미라와 나는 어느 새 등을 맞대고 서로를 벤치에서 밀쳐내려 씨름을 하고 있었다. 어느 덧 맞닿은 등 사이로 땀이 맺히고 미라 등의 굴곡이 더 세세히 느껴짐에 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미라도 나와 같았을까? 우리는 어느 새 밀쳐내던 일도 그만두고 가만히 등을 빈틈없이 붙인 채 꽤 오래 동안 아카시아 나무 아래 말없이 앉아있었다. 한참 후 오후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벌떡 일어나서 그 아카시아 숲을 총총히 빠져나왔다.

/ 이현준(소설가, 국문과 박사과정)

이현준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한림대 수시모집 경쟁률 5.09대 1로 ‘3년 만의 상승’
2
[보도] 2023학년도 국가장학금 신청, 재학생 1차 필수
3
[보도] 코앞으로 다가온 졸업, ‘유예 신청’ ‘심사료 납부’
4
[보도] 4차 동아리 대표자 회의로 ‘유종의 미’ 거둬
5
[보도] 겨울밤을 수놓은 하나의 목소리, ‘한림합창단 정기공연’
6
[보도] ‘창의적인 아이디어’ 캡스톤 경진대회 실시
7
[기획] 1년 만에 부활한 총학, 4곳서 연장투표도 진행돼…
8
[선거특집] “학우들의 선택에 부응하는 학생회가 되겠다”
9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1
10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2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