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우행시)으로 잘 알려진 공지영은이시대최고의여류소설가다. 그런 그녀가 지난 1993년에 발표한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제목만큼 내용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불교 최초의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은 결코 교차하지 않고 제각기 자라는 코뿔소의 뿔처럼 여성들도 남에게 기대거나 얽매이지 말 것을 주장하고 있다.

글쓰기 역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써야 한다. 글 매무새가 미끈하면서도 옹골차기* 위해서는 차분히 사유(思惟)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글을 쓰는 행위는 남의 도움 없이 글을 써 나간다기보다 홀로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야 함을 의미한다. 소재에서부터 들머리는 물론, 펼치기와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색다른 글은 그런 가운데 서서히 완성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떤 장소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글을 쓰기에 좋을까? 1천년 전, 중국 송(宋)나라의 대문인(大文人)이었던 구양수(歐陽脩)는 이를 위해 삼상(三上)을 꼽은 바 있다. 이른바 마상(馬上), 침상(寢上), 측상(厠上)이 그것이다. 마상(馬上)이란, 말 위를 뜻하는 것으로 말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던 옛 선비들이 하릴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때우기보다 말 위에서 글감을 떠올리거나 이미 쓴 글을 되새기라는 권유가 숨어 있다. 21세기의 시쳇말*로 바꾸자면, 전철이나 버스, 승용차 안에서 보다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라고나 할까?

다음으로 침대를 이르는 침상(寢上)을 들 수 있다. 역시, 하루의 피로를 푸는 장소로, 꽉 막혀 있던 생각이 의외로 술술 풀려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데카르트는 그의 철학적 사고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구상했다니, 좋은 글을 구상하는 장소로는 마상(馬上)에 버금간다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던 그의 철학적 명제는 더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은 화장실을 의미하는 측상(厠上)이다. 어르신들께서 간간히 측간(厠間)이라 부르기도 하는 측상(厠上)은 몸의 경직을 풀어야만 일(?)을 치를 수 있는 비밀 장소이다. 어느 서양학자는 실험을 통해 암모니아 냄새가 근육의 긴장을 이완시킨다는 생물학적 근거를 제시한 바 있다지만, 어렵게 갈 것도 없이 우리의 조상들은 1천년 전부터 구양수의조언(助言) 아래 측상(厠上)을 최고의 사유 장소로 애용해 왔다.

장소는 아니지만, 긴장을 이완시키는 또 하나의 대상으로는 산책을 꼽아 볼 수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호사*(豪奢)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5분간의 짬으로 마련되는 산책이 의외로 많은 생각과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사실은 반드시 홀로 산책해야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 그런 까닭에 정해진 시간에 언제나 홀로 산책했던 칸트는 인간의 이성에 관해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계사에 남길 수 있었다. 지금도, 독일에는 칸트가 거닐었던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의 산책로를 본 따 ‘철학자의 길’로 명명한 수많은 산책로들이 즐비하게 흩어져 있다.

/ 심훈(언론정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