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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당신은 지금 멜랑콜리한가?뒤러, <멜랑콜리아Ⅰ>(1514)
신혜경 교수  |  @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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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9.23  00: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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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는 이래저래 우울한 일들이 많아서인지, 문득 뒤러의 그림이 생각났다. ‘멜랑콜리아’, 즉 우울이라는 말은 흑담즙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melas(검은)+kholé(담즙))에서 유래했다. 우울과 흑담즙이 무슨 상관일까? 히포크라테스의 사성론에 따르면, 인간의 기질은 네가지 체액의 양에 따라 정해진다. 다혈질의 인간은 쾌활하고 낙천적인 활동가, 황담즙의 사람은 성마른 변덕쟁이, 점액질은 냉정하고 소심하며, 흑담즙은 우울한 성격을 낳는다. 그래서 멜랑콜리아라는 말이 우울을 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중세까지만 해도 멜랑콜리아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멜랑콜리아가 지배적인 사람은 욕심 많고 감정적이며 나태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혼자 공부하기 적격인 성격이라고 생각되었다. 뒤러 이전에 그려진 멜랑콜리아의 의인화는 흔히 졸거나 잠든 모습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중세에는 7대 죄악의 하나인 나태와 결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뒤러의 동판화에서 멜랑콜리아는 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멜랑콜리아Ⅰ>에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멜랑콜리아를 상징하는 여인의 사색적인 모습이다. 점성술에 따르면 멜랑콜리한 사람은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난다고 한다. 토성의 신 사투르누스는 대지의 신이며 석공과 목공의 수호자로 여겨졌다. 여인의 오른쪽엔 컴퍼스가, 한가운데는 수평계, 톱, 자, 못, 망치 등 다양한 목공도구들이 놓여있음은 이 때문이다. 건물의 벽에는 저울, 모래시계, 종, 마방진이 눈에 띈다. 이는 수학과 기하학을 암시하며,  사투르누스가 사물의 치수와 양을 감독한 것과 관련된다. 특히 뒤러가 유럽에 소개했다는 마방진은 여기서는 16칸으로 된 4방진으로, 자세히 보면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모두 34가 되도록 수가 적혀있다. 당시의 점성술에 의하면 3방진은 토성, 4방진은 목성, 5방진은 화성과 관련된다고 믿었는데, 뒤러가 4방진을 넣은 것은 우울한 토성의 기운을 활력과 즐거움이 넘치는 별인 목성의 기운으로 완화시키려한 것이다. 또한 멜랑콜리아의 머리 위에 놓인 화관이 습한 식물인 수초와 물냉이로 된 것도 점성술에 입각하여 차갑고 건조한 우울함의 성질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리라. 그녀 옆의 맷돌 위에 앉아있는 푸토는(고대미술의 소년상인 푸토는 원래 큐피드의 상이었으나 점차 장식적 모티브로 변해서 기독교 미술에서는 흔히 천사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석판 위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 파노프스키에 따르면, 성숙하고 학식이 풍부한 멜랑콜리아는 사색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이론적 통찰력”을 보여준다면, 순수한 아이는 행동하지만 사색할 수 없는 “실천적 기능”을 상징한다고 한다.  

중세에는 “태만, 음울함, 졸음”과 같은 부정적 함의를 지녔던 멜랑콜리는 이제 르네상스 시대의 뒤러에 이르러 “지적인 관조, 지성과 사색”으로 표현되었다. 그가 표현한 멜랑콜리아는 광기어린 천재의 좌절과 우울이다. 멜랑콜리아의 뭔가를 노려보는 집념에 찬 두 눈과 불끈 쥔 주먹은 수학자이자 기하학자로서의 이상과 좌절을 그린 뒤러 자신의 정신적 자화상이라 한다. 그렇다면 멜랑콜리아는(아니 뒤러는) 왜 우울한가? 바부르크가 해석했던 것처럼, 이는 점성술과 같은 고대적 믿음과 근대적 의식 사이에서 “내면적, 지적, 종교적 해방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 근대적 인간의 고독한 자의식을 반영하는 것인가? 또는 도처에 널려있는 근대적인 합리적 기술적 수단으로는 결코 진정한 인간의 해방과 앎을 이루어낼 수 없음을 그녀(또는 그)가 간파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러한 실제적인 수단을 이용해 실천하지 못한 채 그저 이론적인 사색에만 몰두하는 무능력함 때문인가? 이제 똑같은 질문이 우리 자신에게도 던져질 수 있다. 나는 지금 멜랑콜리한가? 나의 멜랑콜리아의 근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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