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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하루] 만년필
이현준 작가  |  skdak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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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9.30  19: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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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이생진

성산포에서는
관광으로 온 젊은
사원 하나가
만년필에
바닷물을 담고 있다.


왜 젊은 사원은 만년필에 바닷물을 담았을까. 나는 늘 궁금했다. 성산포의 아름다움을 만년필에라도 담아오고 싶었을까, 아니면 만년필을 쓸 때 마다 바다 내음을 맡고 싶었을까. 어쩌면 잉크를 버리는 행위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인도 그 이유 따윈 몰랐을 것이다. 시인이기에 그저 낯선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가끔은 궁금하다. 시인은 그 이유를 묻지 않았을까, 하고.

한때 만년필이 최고의 선물인 시절이 있었다. 이름까지 새겨 선물로 주는 만년필은 받는 이에게나 주는 이 모두에게 꽤나 깊은 추억이 될 만한 물건이었다. 누구나 양복상의나 가방에 만년필 하나쯤은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고, 잉크가 새어나와 옷과 서류, 책 따위를 망치기 일쑤였다. 아마 이생진의 '만년필'이란 시도 그 시절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시 속의 젊은 회사원은 입사를 축하한다며 누군가에게 그 만년필을 선물로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닷물을 담는 순간, 그 행위와 상관없이 선물한 사람의 얼굴도 한번쯤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에게도 만년필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작가가 되겠다는 겉멋에, 다 망가진 아버지의 만년필이나 친구가 사준 싸구려 만년필을 가방에 꼭 챙겨 다니곤 했다. 펜촉이 갈라지고 잉크가 번져 여간 불편하지 않았지만 나는 작가라면 만년필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칠판을 빼곡이 채운 역사수업시간에도 노트에 구멍을 내가면서 나는 만년필을 고수했다. 벌써 10여년이 넘은 일이고, 이제 아득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그때 내 소원이 있었다면, 파카나 몽블랑 같은 품격에 맞는 만년필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년필이 골동품 취급을 받는 시절이 오면서 나는 그 꿈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작년 가을의 일이다. 조교를 그만 둔다는 말에, 강사 한분이 내게 선물을 건넸다. 만년필이라고 했다. 몬트블랑크? 나는 그저 4,5만원짜리 만년필이란 생각에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게 몽블랑이란다. 선물을 받고 한참 뒤에야 그것이 학창시절 갖고 싶던 몽블랑이란 사실에 나는 어이쿠, 했다. 첫 소설집이 나오면 선물한 만년필로 사인을 해 달라던 강사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동갑내기란 이유로, 조교를 하면서 가장 잘 통했던 선생님이었다. 나의 친절에 가장 고마워했고, 학기말엔 작은 선물이라도 건네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예술'을 가르치는 사람은 어때야 하는지를, 그 예술 같은 사람은 끝까지 빈틈없이 보여준 셈이었다. 내 이름 석자가 새겨진 만년필, 그저 그때나 지금이나 고마울 따름이다.

1년이 지나 다시 가을이 왔건만, 아직 내 창작집이 나올지는 묘연하기만 하다. 잘못하면 어울리지도 않는 동화집이 먼저 나올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의 만년필엔 잉크가 가득했는데 그는 왜 가난했을까'라고 했던 이생진 시인의 시 한 구절처럼, 영원히 생존의 굴레를 뛰어넘지 못할까 두렵다. 그래도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몽블랑'이 종종 나를 고쳐 세운다는 것이다. 약속이 지켜지도록 멀리 에돌아가는 나를 불러 세우곤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난 언제 쓰일지 모르는 만년필에 잉크 대신 북한강 물을 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땐 알게 되지 않을까. 젊은 사원이 바닷물을 만년필에 담은 이유를 말이다. 역시 인생은 그런 것인가 보다.

/ 이현준(소설가 · 국문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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