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메모는 사장(死藏)되기 쉬운 기억의 편린(片鱗)들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고마운 존재다. 컴퓨터로 따지자면 전원이 나가거나 소프트웨어가 말썽을 일으켜도 정보를 고스란히 저장해 주는 롬(ROM)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해서, 하루가 지나건 백 년이 지나건, 기록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마력(魔力)이 메모에 깃들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속 문화 저술가이며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베스트 셀러로도 유명한 주강현은 메모의 마력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또 다른 메모광이다. 아이디어를 처음 떠 올렸을 때의 느낌을 생생하게 보존하기 위해 보관함을 따로 만든 그의 보물함에는 메모 원본들이 항목별로 보존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하(大河)도 숱한 물줄기들이 모여 이뤄지듯이, 메모도 처음부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일가(一家)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 하나씩 꾸준히 모으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게 둘이 셋 되고, 셋이 넷으로 무리를 이루기 시작하면 어느새 원고지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세력으로 성장하게 마련이다. 메모는 또, 훗날 인용하고픈 글귀를 소중하게 보관해 주는 비상 식량 창고 역할도 한다. 배고플 땐 언제고 꺼내 먹을 수 있는 까닭에 웬만한 글쓰기가 두렵지 않게 됨은 물론이고. 이렇듯 활용가치가 다양한 메모는 무턱대고 행하기보다 요령껏 행할 경우, 그 위력이 배가(倍加)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두 가지 요령을 소개해 볼까 한다.

「메모의 기술」을 저술한 사카토 켄지(2005)에 따르면, ‘언제 어디서든 메모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메모의 ‘제1법칙’이다. 아이디어와 명구란 결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필자의 경우에는 이동 수단 및 장소 별로 필기도구를 마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는 물론이거니와 배낭 안과 컴퓨터 앞, 사무실과 손가방에는 항시 연필과 지우개, 메모지와 포스트 잇의 4종 세트가 여러 종류의 필통 안에 마련돼 있다. ‘포스트 잇’은 가늘고 긴 것을 선호하는 데, 이는 신문이나 잡지,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발견하면 연필로 체크한 후, 해당 면을 ‘포스트 잇’으로 표시해 두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옮겨 적거나 분류할 때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카토 켄지가 건네는 두 번째 조언은 바로 메모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하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앞서 소개한 한비야는 날마다 자기 전에 일기 형식으로 메모하는 습관을 들임으로써 훗날, 그녀의 숱한 ‘행복 바이러스’들을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전파한 경우다. 필자도 책을 읽고 나면 서평을,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평을, 미술관을 다녀오면 미술평을 컴퓨터의 관련 파일에 꾸준히 남겨놓고 있다. 대개는 잠자리에 들기 전이나 주말 아침에 별도의 시간을 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인상적인 글쓰기를 꿈꾸는 여러분들이 해야 또 하나의 과제는? 이제부터 메모지를 몸에 지니며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자료 은행을 설립해 나가는 것이 아닐는지.

/ 심훈(언론정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