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 하던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때는 백일장(白日場)에서 상도 타며 나름대로의 재능을 꽃피웠던 녀석이다. 그러다, 입시에 파묻혀 연필을 놓고 여느 고교생들처럼 책만 들여다 봤다. 그렇게 대학을 들어 간 이후, 간간히 소식만 듣고 살기를 어언 20여 년. 1년 전, 그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신문을 보고, 필자가 책 낸 사실을 알게 됐다며 “부탁 하나 할 게 있다”는 말과 함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그만 신문사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게 됐단다. 하지만, 글을 쓴지가 너무 오래돼서 괜찮다면 자신의 원고를 “미리 교정 좀 봐 줄 수 있느냐”는 조심스런 이야기였다. 옛 추억도 있고 해서 흔쾌히 승락했다. 무엇보다 어릴 적, 한 가닥 하던 그의 글솜씨가 궁금했다. 얼마 뒤, “월요일 오후가 마감”이라는 메일과 함께 첫 번째 원고가 일요일 저녁에 도착했다. 들여다 보니, 오•탈자나 띄어쓰기, 엉터리 문장과 같은 기본적인 문법 면에서는 역시 손볼 곳이 없었다. 정작, 문제는 머리말에서부터 맺음말에 이르기까지 글이 자연스레 전개되는 구성이었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는 도무지 본문과 이어지질 않았고 결말과는 더욱 동떨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결국, 문단문단 간의 배치를 바꾸며 글의 구성을 완전히 뜯어 고쳤다. 물론, 눈앞에서 느껴지는 친구의 안타까움은 뒤로 한 채.

그러기를 10여 회. 어느덧, 1년이 흘러 버렸다. 얼마 전, 역시 일요일 오후에 보내온 그의 원고를 다시 의례적으로 받아 든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전개되는 친구의 글이 모니터 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언제 그렇게 글이 늘었냐?”
“왜? 이젠 좀 읽을 만 하냐?”
“읽을 만 한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하산(下山)해도 되겠다.”
“짜식, 지가 무슨 무림의 고수라고. 그래. 어쨌든 그 동안 정말 고마웠다.”
“고맙긴, 뭘.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구성이 좋아지게 됐냐?”
“응, 네가 항상 구성과 전개가 중요하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머리말에는 그와 관련된 것을 배치하려고 신경 많이 써 봤어.”

이후, 친구는 필자로 인해 그리웠던 유년 시절의 자신을 되찾았다며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친구만 소중한 것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1여간 글을 봐주면서 기초가 어느 정도 닦여진 이들에겐 글의 구성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조언(助言) 하나. 단단하면서도 자연스런 옹글을 쓰기 위해서는 각 문단마다 소제목을 붙여보는 요령이 필요하다. 만일, 소제목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면 그 글은 좋은 흐름을 유지하고 있을 터. 하지만, 각기 병렬식으로 나열돼 있다면 한 번쯤 글의 흐름을 제고해 봐야 한다.

/ 심훈(언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