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있다. 때문에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있는 사람은 그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없게 되고자 생각하게 되고,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있고자 생각하게 된다.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부끄러움을 닦는다고 한다. 요컨대 이를 닦아 힘써 행할 뿐이다.
「책 읽는 소리」, 정민, 145-6쪽.

18세기의 학자로 글과 서예에 모두 능했던 이만부(李萬敷)의 글이다. ‘부끄러움을 닦는 법’이라는 98자의 원문 가운데 부끄러울 ‘치’(恥)자만 35번에 달하는 반복법의 극치(極致)다. 오늘 소개하는 주제의 전형(典型)이라고나 할까?

몇 해 전, ‘내 머리 속의 지우개’란 제목으로 ‘글짱 시리즈’를 쓴 적이 있다. 당시, 필자가 강조했던 바는 ‘반복 어구의 회피’에 관한 것이다. 같은 단어, 유사한 문구의 중언부언한 나열은 문장을 지루하게 할 뿐 아니라, 독자들로부터 수준을 얕잡히는 결정적인 패인(敗因)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하지만, 이번 주에는 180도 반대되는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무릇, 고수는 반복도 꾀할 줄 알아야 절대적인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는 의미에서. 굳이 말하자면, 상단 옆차기를 수월하게 해내야 상단 옆차기를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반복어구를 동원하는 주된 이유는 운율로 일컬어지는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자칫, 늘어지기 쉬운 글맛에 생기를 불어넣는 감초(甘草)라고나 할까? 때문에, 반복법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시, 수필 등과 같은 문학 작품을 가까이 하는 것이 좋다.  

반복 어구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건네자면, ‘강조’하고 싶은 말에만 반복 어구를 한정 지어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문장 안에서 ‘특정 단어’를 강조’할지, 아니면 문단 내에서 ‘특정 문장’을 강조할지 결정해 사용하는 것도 요령으로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문구—특히 단어--에 작은 따옴표를 붙임으로써 시각적인 환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도 유용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이라는 글은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나의 첫 번째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독립’이라고 하겠다. 나의 두 번째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독립’이라고 대답하겠다. 나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역시, ‘독립’이라고 말하겠다.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 갑자 동방석, 칙칙카포 사리사리센터, 워리워리 세뿌리까, 무두셀라 구루미 …….”

한 시절을 풍미했던 개그에 등장하는, 일명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이다. 물론 이 뒤로도 한참 남아있지만 지면상 생략했다.

이름이 길어지게 된 사연은 이렇다. 옛날 옛적, 손(孫)이 무척 귀했던 집안에서 어렵게 자식을 얻었다. 아버지는 자식의 무병장수를 비는 마음에서 작명소(作名所)를 찾아가 이름을 짓기로 했다. 작명소 주인은 부정(父情)에 답하듯 영원토록 장생하라는 의미에서 ‘수한무’(壽限無)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마뜩지* 않았던 아버지가 좀 더 강한 이름을 원했고, 주인은 다시 ‘수한무’ 뒤에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와 두루미를 얹어주었다. 여전히 떨떠름해 하는 아버지에게 이후 극동 아시아, 아프리카는 물론, 아랍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들의 이름이 계속 덧붙여 졌다. 그런데 난데없이 웬 이름 이야기?

아버지와 목격자, 두 사람만 등장하는 이야기의 끝 무대에서 긴 이름을 가진 아이는 결국 저수지에서 익사하고 만다. 아버지에게 달려간 목격자가 너무나 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변고(變故)를 알리고, 아버지가 이 이름을 받아 사고를 재차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탓이다. 코미디의 백미*(白眉)는 가뜩이나 긴 이름에 대한 아버지와 목격자의 끝없는 반복에 있다. 그러나 코미디에서의 하일라이트에 속하는 반복의 미(美)가 좋은 글을 원하는 우리들에게는 치명적인 독소(毒素)로 작용한다.

“단어의 반복이나 일관된 연결로도 리듬을 살릴 수 있다. 수사학에서는 반복에 의해 인상을 강화하는 방법을 ‘반복법’이라고 한다. 한 문장이나 문단 안에서 같은 단어나 어구(어구) 또는 문장을 반복함으로써 감정적 호소의 효과를 높이는 표현기법이다. ‘살어리 살어리랐다 청산에 살어리랐다’처럼 시에서 시어의 운율에 맞춰 흥을 돋우거나 뜻을 강조할 때 많이 쓰인다. 반복법은 광고문구나 글의 제목에서도 유익하게 활용된다.

부끄러움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있다. 때문에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있는 사람은 그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없게 되고자 생각하게 되고,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있고자 생각하게 된다.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부끄러움을 닦는다고 한다. 요컨대 이를 닦아 힘써 행할 뿐이다.

이만부의 부끄러움을 닦는 법이라는 글이다. 원문이 모두 98자인데 이 가운데 부끄러울 치자가 무려 35회나 나오는 재미있는 글이다. 그는 부끄러움이 참 많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 부끄럽고,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또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을 해놓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또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을 해놓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부끄럽고, 부끄럽지 않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 또 부끄럽고, 부끄러우니까 부끄럽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부끄럽지 않다는 그 생각이 부끄러워서 도 부끄럽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장난기가 잔뜩 담겨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 심훈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