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세림 기자

젖어버린 시간은 시계조차 적신다. 불행히도 나는 젖은 시계를 말려야한다. 양지 바른 곳에 널고 싶은데 이미 그러한 곳은 없고 모든 것은 지나온 길처럼 그늘 져있다. 바다에 놀러가 안 들어간다고 버티다 던져져서 젖어버린 고집처럼 찝찝한 습기가 가득하다. 결국 시계에는 남겨진 것들을 닮은 곰팡이가 꽃처럼 피어났다, 뿌리까지 젖어 썩어버리는 꽃이. 그리고 시계마저도 썩어갔다. 태어나서 잠시도 쉬지 않은 초침은 썩어버린 부분을 털어내지 못하였고 제 갈 길을 가야했다. 하는 수 없이 젖은 시계를 방 한 구석 쳐다보지 않을 만한 곳에 걸어놓았는데 물이 뚝뚝 떨어져 방 전체를 적셔놓았다. 방뿐만 아니라 나를 비롯한 모든 것들, 이 밤에는 젖어 들어간다. 아니, 태양조차 젖어버려 흐리고 어두워서 낮인지 밤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