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세림 기자

쿵쿵쿵, 시끄러운 소음이 귓가에 울린다. 아파트의 방음이 잘 되지 않는 건지, 윗집의 상식 밖의 몰지각함인지. 들리는 발소리는 아마 윗집 샐러리맨의 어린 딸일 것이다.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TV에 나오는 어느 아역 탤런트 같은 매끈한 얼굴을 한 여자아이는 공놀이를 하며 뛰는 걸 좋아한다. 저녁에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TV를 보거나 밥을 먹을 때 울려대는 '쿵쿵쿵' 이나 '으와아아앙' 하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고요한 내 휴식에 파동을 일으키곤 한다. 가끔은 아이를 혼내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도 들린다. 내가 왜 윗집의 이런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알아야만 하는 건지,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몇 번 경비실을 통해 항의 해보았지만 나아지는 기미가 없어서 전엔 직접 위층에 올라가 이야기를 했다.

"죄송한데 너무 시끄러워서요, 제가 직장인이라 낮에는 상관없지만 밤에 뛴다거나 공놀이를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요?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요."

이 정도 말을 하면 금붕어라도 알아들을 것이다 하지만 위층 여자는 금붕어만도 못한 인간이었다. 여자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유난을 떤다는 듯,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만 빠끔히 내밀어 알았다고 건성으로 대답하곤 문을 닫아버렸다. 그 후로도 소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보란 듯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다. 망할 7층, 공중도덕도 예의도 모르는 싸가지 없는 집구석 같으니.

바쁜 출근길, 1층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는 뒷짐 진 노인의 걸음마냥 느리기만 하다. 엘리베이터를 매번 같은 시간마다 타면, 그 시각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과 곧잘 마주치곤 한다. 짧은 치마의 교복을 입고 담배 쩐 내를 풍기는 14층 날라리 여학생도, 아침마다 산책을 가는 듯 개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4층 할머니도, 7층 아이의 아빠인 샐러리맨도 매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곤 한다. 이렇게 자주 마주치면 그 엄청난 소음에 대해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이놈의 집안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집안인지 미안한 기색조차 없다.

이제 익숙한 얼굴들이건만,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짧은 몇 초간의 시간은 침묵과 어색함으로 한없이 길기만 하다. 1평 남짓한 공간 안에서 서로를 외면하는 시선들은 무언극을 보는 듯 어색함으로 가득 채워진다. 4층 할머니만 예외적으로 아침마다 수다스럽게 말을 걸고는 하는데, 이질적인 그 수다스러움이 어쩐지 침묵보다 부담스럽기도 하다. 차라리 아예 같은 공간에 없는 것처럼 투명인간 취급하는 14층 날라리 여학생이나 고개만 까딱하는 7층의 샐러리맨처럼 형식적인 것이었으면 좋으리란 생각까지 든다. 4층 할머니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난 4층 할머니의 딸이 이번에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나, 사위가 은행에 다닌다는 사실 따위가 전혀 궁금하지가 않다. 마땅한 할 말이나 공통된 관심사도 존재하지 않는 형식적인 대화는 피곤하고 또한 지루하다.

간밤엔 눈이 내린 모양이다. 이미 누군가 밟고 지나간 듯, 흰 눈엔 선명한 발자국이 찍혔다. 좋지 않은 날씨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살짝 얼은 길에서 하이힐을 신고 걷는다는 건 상당히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발이라도 미끌, 했다간 아침부터 사람들의 좋은 눈요깃감이 될 뿐더러 탁한 회색빛으로 짓이겨진 눈을 봐야하는 것도 싫다. 눈이 오면 길은 또 왜 그렇게 막히는 건지. 더 이상 눈을 보며 설레이거나 기쁘지 않다는 사실에 약간은 씁쓸함도 느낀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주머니 안에 넣어둔 핸드폰이 위잉 하고 진동을 울려댄다. [수경아, 잘 지내니?] 평소엔 연락조차 없던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뜬금없는 문자는 잠시 날 고민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문자들은 전혀 기쁘지 않다, 사실 두렵다. 필시 열에 여덟은 단순한 안부를 묻는 문자가 아닌 것임을 알기에. 분명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거나 곧 결혼을 한다거나. 거의 두 가지 중 한 가지일 확률이 높다. 답장을 보낼까 말까 잠시 고민을 하다 이내 못 본 척 핸드폰 폴더를 닫아버린다. 어차피 돌아오지 않을 불필요한 소모는 줄이는 것이 좋다.

"미스 김, 나 커피 한 잔만"

한참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기름으로 이마가 번쩍거리는 최 부장이 커피를 타달라고 손을 흔든다. 지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하지만 두 얼굴의 야누스처럼 곧 표정관리를 하곤 커피를 타기 시작한다. 속으로야 온갖 욕을 하지만 실상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이렇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싫은 일을 좋다고 해야 하기도 하고. 우리 부서의 최 부장은 능구렁이 같은 인간으로, 소문엔 부인의 사촌이 우리 회사의 높은 직위에 있다고 했다. 전에는 최 부장 시선이 날 위 아래로 훑어보며 미스 김, 서른인데도 아직 탱탱해 하며 소름 끼치는 웃음을 흘렸다. 속으로는 온갖 욕을 했지만, 겉으로야 그저 웃을 수밖에.

"신경 안 써주셔도 잘 알고 있어요, 근데 부장님은 살 좀 빼셔야겠어요. 이제 술 좀 작작 드시고 집에 일찍 들어가세요. 큰 따님이 대학생이시라고요? ”

눈치 빠른 최 부장은 내 말에 담긴 뜻을 이해했는지, 크게 헛기침을 한번 하곤 커피를 들고 자기 의자로 향했다. 회사 내에서 경력도 좀 오래된 편이고 차갑고 똑 부러지는 모습의 나에겐 최 부장이 그렇게 함부로 대하진 못한다. 하지만 대학을 갓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한 어린 애들에겐 얼마나 질척이는지. 술을 마시는 날엔 그 강도는 더욱 심해진다. 얼마 전 회식 날, 최 부장은 만취한 상태로 이번에 입사한 25살짜리 딸 같은 여직원에게 그 짧고 굵은 족발 같은 팔을 두르곤, 뭐 힘든 거 있음 말해. 내가 예뻐서 그러는 거니까. 나한테만 잘 보이면 말이야 하며 은근슬쩍 여직원의 허벅지를 만져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빛을 보내는 신입 여직원을 두고 우리 팀 다들 시선을 피해댔다. 무언의 표현이었다. 참아라, 어쩌겠니. 하며 추악한 밑바닥을 내보이는 이기심들의 표현.

날 쳐다보는 어린 여직원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물 없이 삶은 계란을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해졌다. 언제부터인가 무언가를 참을 때마다 속에선 답답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무엇인지 모를 딱딱한 덩어리 같은 그것은 혈관 사이에 침투된 불포화지방산처럼 슬며시 소화기관에 들러붙는다. 감기에 걸려 코가 꽉 막혀버린 것 같은 답답한 기분이다. 하지만 내가 뭘 어쩌겠는가? 난 최 부장보다 낮은 직급의 직원인 것을. 최 부장 한 마디에 이렇게 될 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는데 참아야지.

어느 덧 나이를 서른 정도 먹다보니 현실에 익숙해져 버렸다. 꼬마 때 주사 바늘만 보아도 울던 내가 이젠 너무나도 무덤덤하게 주사를 맞는 것처럼 말이다. 어렸을 때 주사바늘을 참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었다면 이젠 주사보다 참아내야 할 것이 훨씬 많기에, 이젠 그 정도엔 끄덕도 하지 않을 정도로 무뎌져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내 감정들은 얼마나 무뎌진 걸까? 앞으로 더 무뎌질 감정이나 남아 있긴 한 걸까? 마음을 손으로 비유한다면 내 손은 고단했던 삶만큼, 굳은살이 잔뜩 배겨버린 메마른 노인의 손 같지 않을까.

머리가 아파온다. 멀미를 하듯, 속도 울렁거리는 걸 보니 또 체한 듯싶다. 익숙하게 소화제 한 알을 먹고는 물로 꿀꺽 삼켜버린다. 아마도 회사 사람들과 함께 먹은 점심이 얹힌 모양이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자장면이었다. 난 자장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다 같이 간 중국 음식점에서 이 대리는 우리, 다 따로 시키면 주문한 음식 빨리 안 나오니깐 그냥 자장면으로 통일하죠? 라며 메뉴를 통일시켰다. 다른 사람들이 싫다고 했으면 좋았으련만 다 좋다고 동의해버리자 나도 자장면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맛깔스럽게 자장면을 휘휘 비벼 입으로 가져가는 여느 사람과 달리 자장면은 더디게 내 목을 통해, 식도로 내려가는 듯 했다. 그리고 바쁘다고 휘휘 나가버리는 사람들 속에 떠밀려 나도 그곳을 나오게 되었다. 그 결과 자장면을 몇 입 먹지도 않았음에도 급체를 한 듯했다. 오늘은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체했던 손을 딸 것이다.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내려가겠지.

퇴근 길, 추운 바람에 얼굴이 시리다. 버스를 기다리다 왠지 모르게 계속 핸드폰 폴더를 여닫는다. 핸드폰은 현재의 시각만을 가리킨다. 휑한 게 느껴지는 공기가 바람인지 마음인지 몰라 단단히 옷깃을 여민다. 집 문을 열고 현관 앞을 들어서자 느껴지는 캄캄함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출근 전 불을 켜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지 하곤 체념한다. 전자렌지에 밥을 데우고, 냉장고에서 찬 밑반찬을 꺼내 대충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우두커니 혼자 먹다보면 외로워진다. 마치 내가 이 지구상에 불시착으로 떨어진 외계 생명체가 된 듯하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혼자면 혼자여서 외롭고, 같이 있으면 같이 있으므로 외롭다. 어쩔 땐 혼자가 낫다 싶기도 하다.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해 공기 중에 붕 하고 떠돌기만 하는 외로움은 혼자인 것보다 더 외로우니까.

외로운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곤 한다.

"오늘은 이 과장이 글쎄 점심을 먹고 '꺼억'하고 트림을 하는 거야! 난 밥도 다 안 먹었는데 말야, 밥 맛 떨어지게시리. 그러더니 물수건으로 목이며 땀으로 번들번들한 이마를 쓱쓱 닦는 거 있지? 나 토할 뻔 했다니깐?"

"야야 걔는 말도 마! 완전 목에 철심 박았어, 대기업 다닌다고 어찌나 고개를 쳐드시는지 그 자신감으로 승천을 하시겠더라, 여의주 물고 왜 하늘로 승천하시지 선을 보러 온 건지 모르겠다니.."

"엄마가 이번 달부터 생활비 내라는 거 있지, 내가 집에서 다닌다고 너 재워주고 밥 먹여주고 여태까지 했으니 이제부턴 생활비도 내래, 아휴 나 시집가기 전까지 돈 모으는 것도 빠듯한데. "

뭐,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그래,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한다고 표현하는 것만으로 그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걸까? 난 잘 모르겠다. 세상 누가 내가 아닌 이상,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행복도 온전히 내 몫이고, 슬픔도 온전히 내 몫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 또한 내 몫이겠지.

카카오 100퍼센트 함량 같은 쓰디쓴 시련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느껴지는 단맛은 쓴맛보다 훨씬 적기만하다. 그래서인가? 이제는 익숙한 대처법 또한 습득했다. 미리미리 준비하면 된다. 철저하게, 버릇처럼.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만나고 사귈 때 어느 정도 일정선 까지만 허용하며, 내 나름대로 방어선들을 구축해 놓았다. 그 이상은 친밀해지지 않게, 내가 그어놓은 경계까지만. 모든 걸 다 안다는 듯한 친밀함은 때론 낯설음보다도 어색하고 부조화스럽다.

찬바람을 맞으며 아파트를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6층에 멈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하루의 고단함이 조금은 가시는 듯하다.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를 지나 아파트 계단으로 누군가가 내려간다. 7층 꼬마다. 7층의 여자는 추운 날씨에 무장을 했는지 모자와 마스크, 목도리를 둘둘 말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다. 서둘러 바삐 아이를 안고 내려가는 여자, 근데 7층 여자 머리 길이가 참 길다. 저렇게 길었었나?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다. 작은 화장실 겸 사워 부스가 있는 화장실이지만 온수가 잘 나오는 관계로 꽤 만족스럽다. 때때로 10평이 약간 넘는 이 집은 나 혼자 쓰기는 너무 넓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하나로 다 채울 수 없는 10평 남짓한 빈 공간만큼의 외로움들이 집 안 곳곳에는 묻어 있다. 긴 바늘로 손가락을 쿡 찌르자 검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이제 좀 괜찮으려나 싶지만 어쩐지 체기는 쉽게 가셔지지 않는다. 조용한 거실에서 사이다 한 잔을 마시고 TV를 본다. 멍하니 누워 있는 이 시간이 어쩌면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아아, 길동 아파트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늦은 시간에 죄송하지만 잠시 방송을 하겠습니다. 105동 702호 김 경민 양을 찾고 있습니다. 하얀 토끼 귀 점퍼를 입고 머리를 묶은 어린이를 보신 분은 경비실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아아,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 밤 10시 반, 스피커 사이로 경비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달콤한 휴식을 방해하는 나와 상관 없는 목소리가 시끄럽고 짜증스럽다. 근데 가만, 105동 702호면 우리 집 위층이다. 어쩐지 오늘은 조용하다 했더니, 아까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가 잃어버린 모양이다. 애 엄마도 칠칠맞긴.

다음 날도 역시 수다스러운 4층 할머니와 14층 날라리 여학생은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지금 출근하나 봐?"

"네, 산책 가시는 길이세요?"

아침마다 4층 할머니가 말을 걸때면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 나도 뭔가 계속 대꾸를 해서 대화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대화가 끊기면 그 무언의 공기 속에 인위적이고 형식적이며 어색하기까지 한 이 관계가 밑바닥을 보이는 것만 같아 억지로 더 할 말을 꽉 쥐어짜본다. 방바닥 닦을 걸레의 물기를 짜는 것처럼. 이건 상당한 정신노동이다. 14층 여학생은 그 짧은 시간동안은 투명 인간이 된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가만히 그 몇 초를 버틸 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저 아이가 부럽다.

“아 그나저나 어제 7층 애 엄마랑 애 아빠 말이야, 밤에 콩나물이랑 두부 사오면서 봤는데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이 막 애 찾으러 돌아다니던데, 애 찾았으려나? 애 아빠가 엘리베이터 타면 물어보려고 했더니만.”

7층에 대한 소식이었다. 난 뭔가를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엘리베이터는 ‘땡’하고 1층을 알렸다. 우리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며칠이 지나도 7층 남자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파트 입구에는 전단지가 붙었다. 아이의 신상명세와 옷차림 등이 써진 전단지였다. 아파트 입구에 붙은 전단지는 바람에 팔랑팔랑 휘날리며 위태로워 보였다.

[이름 : 김경민 나이 : 5세 11월 2일 경 실종 됨. 실종 당시 하얀 토끼 귀 모양 점퍼를 입고 있음, 엄마가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한 시간만 집 앞에 앉아 있으라고 했음 퇴근을 7시에 했으니 그 시간 전 혹시 아이를 보신 분이 계시면 꼭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02 - 234- 5678 ]

전단을 본 후 다시금 느껴지는 이물감에 속이 답답해졌다. 11월 2일에 그 아이를 보았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6시 30분경에. 아이의 옷차림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하얀색 옷을 입었던 것 같다. 그 여잔, 아이의 손을 잡고 가던 그 여자는 그럼 누구지? 모자와 목도리와 마스크를 한 긴 머리의 여자. 생각해보니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아이를 안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7층 여자가 머리가 길었나, 짧았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키는 컸는지 작았는지, 말랐는지, 통통한지. 흐릿흐릿, 뿌옇기만한 그녀의 인상이 눈앞에 그려질 듯 말 듯 어지러이 흔들린다. 그 여자는 누굴까? 난 아이를 데리고 간 여자의 얼굴도 보지 못했으며, 그 여자가 아이의 엄마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본 건 그냥 머리가 긴 여자다. 설령 그 여자가 아이를 데려갔다고 해도 난 그 여자의 인상착의도 모른다. 머리가 길다는 것 외엔. 괜히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 나만 귀찮지 않을까 싶어 망설여진다. 왜 그냥 보기만 했냐고 원망하면 어쩌지. 문득 속이 울렁거리며 체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녁에 잠깐 찬거리를 사러 나가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4층 할머니가 묻지도 않았는데 7층 남자의 소식을 알려준다.

“7층 어떡해하니. 정말 안타까워서.. 애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집 지금 초상집 분위기던데.. 아주 애기 엄마가 실성한 사람 같이 군데 글쎄. 전단지 보고 내가 더 놀랐네. 다섯 살 먹은 애를 겨울에 찬 아파트 계단 위에 있으라고 했으니 애가 얼마나 춥고 무서웠겠어, 겨울에는 해도 짧은데 말이지. 그렇게 애 맡길 데가 없으면 잠깐 우리 집에 맡겨도 좋았을 텐데 이게 왠 변고야. 에휴 내가 손자가 있어서 그런지 남 일 같지가 않네.”

난 가만히 4층 할머니의 장황한 중계를 듣다가 묻는다.

“근데 할머니, 7층 애 엄마 머리가 짧아요, 길어요?”

내 물음에 4층 할머니는 뜬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머쓱해진 나는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라고 둘러댄다.

그 이후로 윗집의 층계소음은 사라졌다. 쿵쿵쿵 들리던 아이의 발자국 소리, 울음 소리, 공을 튕기던 소리는 모두 사라졌다. 집 안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똑똑똑 시계의 초침 소리가 정확이 들려왔다. 그러나 사라진 층계소음만큼 마음은 무거워졌다. 또한 6층과 7층의 경계 사이만큼 죄책감은 빠르게 엄습해왔다. 진실을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하루 열두 번을 넘게 밤낮 없이 고민은 계속됐다. 하지만 점점 흘러가는 시간만큼 마음도 옅어져만 가서, 말을 해야 하는 용기는 사라지고 내 마음도 점점 무뎌져가고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 말하면 더 날 원망하지 않을까, 처음에 방송이 나왔을 때 이야기 했어야 했는데.. 아니면 그 다음 날이라도.. 아니야, 전단지를 본 날이라도 알렸어야 했는데..’

이제 목격자가 되어 아이의 이야길 하기에 시간은 너무 많이 지나있었다.

얼마 전엔 저녁에 누가 딩동 하고 벨을 눌렀다. 혼자 사는 난 누군가 벨을 누른다는 게 익숙하지 않다. 올 사람도 없을 뿐더러 오는 사람은 늘 비슷하기 때문이다. 저희 xx일보 구독하시면 자전거 선물로 드리거든요 라며 신문구독을 권유하는 신문 판매원, 증정용 우유 한 팩을 뜯어주며 우유를 마셔보라는 우유 아줌마, 교회 믿으세요? 하곤 불쑥 교회 전단을 내미는 열혈 이단 교회 할머니들, 이번 달 아파트에서 말이야.. 라며 돈 내라는 통장 아줌마.. 그리고 이들 중 제일 반가운 택배 배달원. 이들 이외에 집에 올 사람은 없다. 그래서 누가 벨을 누르면, 문을 열기 전 항상 대문 앞 작은 구멍을 통해 누군지를 확인한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물어볼 게 있어서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심장이 쿵쾅쿵쾅 뜀박질을 해댔다. 뭐라고 하지, 지금이라도 얘기할까, 아니야 지금 와서 무슨 말.. 난 얼굴도 모르고 아는 것도 없는데.. 귀찮게 하면 어떡하지.. 차가워진 손과 심장이 부르르 진동을 울렸다.

"왜 무슨 일로 그러시죠?"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 긴장이 경찰에게도 전달 되었으려나? 아닐 것이다. 난 감정을 숨기는 일에 익숙하다, 알 리가 없다. 이럴 땐 사회생활을 하며 무뎌져버린 표정이 어쩐지 유용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아 다름이 아니라 7층 여자아이가 실종된거 아시죠? 그 것 때문에 물어볼게 있어서 이렇게 실례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7층 여자아이를 마지막으로 보신 게 언제죠?”

꿀꺽, 긴장감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7층 아이요? 글쎄요.. 엘리베이터에서 본 게 다인데요, 아침에 아빠를 따라 가끔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귀엽게 생겨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어요.”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는 경찰이 어쩐지 심문하는 눈길로 쳐다보는 듯해 죄인이 된 것만 같다.

“아, 그럼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쯤이죠?”

“글쎄요.. 실종되기 전인데 오래된 듯해요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끼적끼적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던 경찰은 알았다고 하곤 돌아가 버렸다. 문을 닫고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긴장감으로 뻣뻣하게 굳어있던 근육들이 풀어지며 온 몸이 뻐근해져 왔고 등과 이마는 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미 진실은 저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 날 이후, 밤은 길었고 잠은 오지 않았다. 답답한 무언가가 가슴을 꽉 짓눌러 내렸다. 새벽 4시, 5시에 간신히 잠이 들 때면 7층 아이의 꿈을 꾸곤 했다. 원망스러운 눈빛의 아이를 그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왜 하필 그 상황을 목격하게 된 것인지 이 기가 막힌 타이밍이 원망스러워졌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음식도 소화시키지 못했다. 구역질을 해댔고 배가 심하게 아파오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회사에서 멀쩡히 일을 하는 것도 버거웠다.

미스 김, 요새 어디 아파? 얼굴이 수척하네. 직장 동료인 이 대리가 물었다. 4킬로그램이나 빠졌으니 당연히 수척해졌을 것이다. 머리엔 두 글자만이 떠 다녔다. ‘실종’ 아파트 단지에서 만약 내가 실종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7층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6층 여자인 나도 그저 희뿌옇게 보이지 않을까. 머리가 짧은지, 긴지. 얼굴이 하얀 편인지 검은 편인지. 눈이 큰지 작은지 키가 큰지 작은지.. 이런 사소한 것들조차 알 수 없게.. 6층에는 누가 사는지 알기나 할까? 6층, 6층에 누가 살았지? 라고 말하지는 않을까? 날 기억하는 사람이 4층 할머니 빼고 누가 있을까? 왠지 모를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집에 오는 길, 아파트 앞에 주저앉은 여자가 보인다. 겨울인데 반팔 티에 얇은 치마를 입고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 혼이 빠진 듯한 여자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여자를 보는 순간 이윽고 희뿌옇던 카메라 렌즈의 초점이 맞추어진 듯 또렷해진다. 7층 여자, 아이의 엄마다.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는 아이 엄마의 머리는 짧았으며 마른 편이였다. 믿을 순 없지만 얼마 전 빠끔히 얼굴만 내밀던 여자와 정신 나간 것 같은 저 여자는 동일인물인 것이다. 멀쩡하던 저 여자가 저렇게 된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이 유리조각처럼 가슴에 박혀왔다. 이야기를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아닐 것이다 본 것도 없는데 무슨.

7층 아이는 외동딸이었다고 했다. 4층 할머니 말로는 아이 아빠 집에서 손에 잡으면 부서질까, 불면 꺼질까 하며 애지중지했던 첫 딸이었다고 했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봐도 7층 아이는 귀여웠다. 그러니 자신의 핏줄인 그 아이가 얼마나 귀여웠을까. 아이가 사라진 지는 15일 정도가 지났다. 경찰도 이젠 아이를 찾는 대신 아이의 시신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15일이 지나는 동안 범인에게서는 돈을 요구하는 전화나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고. 정신질환자의 소행이나 살인 쪽으로 범행의 무게가 실려 가고 있다고 했다. 아이에 대한 단서나 목격이 없어서 찾는데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들려왔다. 심장이 퍽퍽해졌다.

집에 오니 아침에 켜놓은 TV가 그대로 켜져 있었다. 아침에 끄고 나가는 것을 깜박한 모양이다. 제멋대로 켜져 있는 TV에서는 뉴스를 떠들어댄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실종되었던 아이가 경북의 야산에서 싸늘하게 죽은 채 발견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범인은 아이를 깊은 야산에 암매장한 후 도주했습니다. 범인에게서 어떠한 연락도 없었던 것으로 봐서 범인은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되는 가운데 경찰은 목격자를 찾기 위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뉴스에 비춰지는 한 아파트가 눈에 익숙하다. 분명 같은 곳인데도 TV에 나오는 저 곳은 다른 세상인 듯 낯설기만 하다.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눈앞이 깜깜해진다던데, 그 말이 진실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갑자기 눈앞이 어둠으로 뒤덮인다. 영화관에서 영화 시작 후 꺼지는 조명처럼. 온 몸은 본드를 칠한 듯,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아이를 죽인 건 범인일까, 아이 엄마일까, 나일까.

얼마 전부터 2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꽉 막혀 숨쉬기도 힘든 답답함을 트이게 할 무언가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끊기 힘들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건 쉬웠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이면 될 뿐이었다. 폐부 깊숙이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인다. 그리고 곧 폐부 깊이 스미게 했던 심연을 공중에 흩뿌린다. 문득, 공중에서 산산히 흩어져버리는 연기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에서는 체기가 느껴진다.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 구역질을 해댔다. 꼬르륵 소리가 나는 몸을 무시하고 몇 달 전 선물로 들어온 양주를 꺼낸다. 잔에 얼음을 몇 개 넣고 찰랑거리는 언더락 잔을 들이킨다. 이대로 담배연기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다음 날, 몸이 아파 회사에는 월차를 냈다. 통증은 진통제를 먹어도 듣지 않았다.

“소화성 궤양입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 하신 겁니까? 참을성이 상당히 강하신가 보네요. 수술까지는 안하셔도 될 것 같고, 약 처방해 드릴 테니 하루에 세 번 드세요. 당분간 술이나 담배, 맵고 짠 음식은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 되도록 푹 주무시고요.”

의사는 미련하다는 듯 몇 마디를 덧붙이며 처방전을 적어주었다. 약을 받고, 집에 가기 전 죽 집에 가서 먹을 수 있을 죽 한 팩을 샀다. 한 손에는 약 봉지, 한 손에는 죽 봉투를 들고선 왠지 모를 복잡한 감정들의 뒤섞임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지나가던 사람들로부터 한 번씩 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런 시선들을 의식할 여력조차 내겐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12월을 넘어섰다. 그 동안에 몇 번의 비가 내리고, 또 눈이 내렸다. 내일이면 크리스마스이브다. 12월 중순쯤에 나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급하게 구하다보니 전에 있던 집보다 낡고, 화장실도 구식이었고, 온수도 바로바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사를 오고 난 후 기분은 상당히 나아져 있었다. 약간의 불면증은 있었지만 전보다 잠도 쉽게 이룰 수 있었고, 체증도 나아졌다.

한겨울에 이사를 가는 것을 4층 할머니는 아쉬워했다.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너무 많은 진실을 지나쳐왔기에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좀 아무래도 찝찝해서요, 원래는 봄에 가려고 했는데 겨울에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구역질이 났으나 겉으로의 나는 아무렇지 않게 보였을 것이다. 4층 할머니는 7층의 이야기를 꺼냈으나, 난 듣지 않겠다고 손사래 하곤 곧 그 곳을 나왔다. 7층 아이의 소식이 들려올수록 체증은 더욱 심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과 조촐한 파티를 하기로 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부터 사람이 많은 밝고 경쾌한 곳에만 있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홀로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홀로 있다가는 참고 있는 죄책감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런 마음과는 반대로 퇴근길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껏 들떠 있었다. 거리에는 흥겨운 캐롤이 울려 퍼졌고, 한눈에 들어오는 큰 대형 트리와 반짝이는 전구들은 한층 크리스마스의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길, 사람들은 뭐가 그리도 바쁜지 바쁜 걸음으로 스쳐갔다.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처럼.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는 지하철 안 사람들은 우리 안에 갇힌 동물들 같다. 동물원 안에서 권태를 씹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그들의 눈빛과 흘러가는 일상에 몸을 맡긴 채 무표정하게 스쳐 지나는 사람들의 눈빛은 어쩐지 유사하다. 지하철 안을 떠도는 매캐한 공기 중에 부유하는 이 많은 사람들과 난 모두 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지하철에서 멍하니 서서 지하철 안을 둘러본다. 아침이랑 크게 다를 것 없는 풍경이다. 사람들은 바쁘게 스쳐가고, 지하철 안의 매캐한 공기도, 신문지를 깔고 잠이 든 저 노숙자도. 가만 생각해보니 아침에 누워있던 저 노숙자가 저녁인 지금까지 잠이 든 건가? 안 좋은 예감이다. 그리고 항상 안 좋은 예감은 적중하기 마련이다.

가만히 다가가서 그의 움직임을 확인해본다. 아무런 미동조차 없다. 주변에 빈 소주병 몇 병만 너부러져 있을 뿐이다. 슬쩍 그의 얼굴을 확인한다. 50세쯤 되었을까? 세상의 온갖 때가 묻어있는 듯한 얼굴은 더럽고, 또한 창백하다. 가만히 눈 감고 있는 그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코 밑의 손가락엔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남자와 내가 맞닿은 손가락을 지나 온 몸에 아찔한 소름이 흐른다. 얼른 손가락을 거둔 다음, 주위를 둘러본 후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에 손이 새빨개지도록 씻고 또 씻는다. 속에서 울컥하곤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지만, 꿀꺽하고 삼켜버린다.

지하철은 빠앙- 하는 경적음과 함께 달려온다. 지하철이 달려오며 느껴지는 매캐한 도시의 내음이 왠지 낯설지 않다.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싣고 다시금 느껴지는 체증을 참으며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