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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 하루] 똑, 똑, 골방을 찾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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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4.24  19: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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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방은

                     -나희덕

 

삶의 막바지에서

바위 뒤에 숨듯 이 골방에 찾아와

몸을 눕혔을 그림자들

그 그림자들에 나를 겹쳐 누이며,

못이 뽑혀나간 자국처럼

거미가 남겨놓은 거미줄처럼 어려 있는

그들의 흔적을 오래 더듬어보는 방

내 안의 후미진 골방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 방

세상의 숨죽인 골방들, 그 끊어진 길이

하늘의 별자리로 만나 빛나고 있다.

 

일곱 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었던 나는 중학생이 되던 해 봄 독방을 가질 수 있었다. 식모방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던 아주 작은 골방이 바로 내방이었다. 식모를 둘만 한 처지는 아니었으니 슬슬 사내 티가 나던 내가 머무를 곳으로 자연스레 정해졌던 것이다. 요즘의 고시원 같은 그 방은, 정말 퀸사이즈 침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꾀죄죄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랑방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하나 달려 있어 누나들은 무시로 내방을 드나들었다. 나는 부러 책상을 구석으로 밀어붙여 문을 막아 버렸다. 나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공식적인 항거인 셈이었다. 더구나 한참 수음에 재미가 들려 있던 나는, 누나들이란 존재가 퍽 귀찮았던 것이다. 제발 내 인생에서 비켜줄래? 나는 매일 같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기막힌 공중침대를 하나 만들어 주셨다. 그것은 1층이 없는, 말 그대로 공중에 떠 있는 작은 침대였다. 아버지는 어디선가 가져온 두 개의 철재 빔을 방 양끝에 걸치고 다시 그 위에 두꺼운 판자와 매트리스를 얹어 1인용 공중침대를 만들어 주셨다. 나는 항상 의자와 책상을 계단 삼아 차례로 딛고 침대에 올라가고는 했다. 천장을 넘어 하늘과 가까워진, 습한 골방 탓에 혐오곤충의 출현에 놀라던 나를 해방해준 그 침대를 나는 무척이나 사랑했다. 누나들이 너도나도 공중침대에서 잠을 자보길 원했지만 나는 굳건히 나의 것을 지켜내느냐고 진땀을 뺐다. 공중에서 잔다는 것의 의미를 그녀들이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나는 공중침대에서 붕 뜬 기분으로 수음하는 것을 좋아했다. 꾸득꾸득 다리를 꼬며 몸서리칠 때마다 철제 빔이 끼득끼득 소리를 내며 교합의 반응을 보였다. 그즈음 나는 침대가 내는 소리에 흥분하는 나를 느끼며, 내가 얼마나 외로운가를 자각했다. 그리고 내가 하는 행위가 모두 외롭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아,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었다. 겨우 중학교 1학년짜리 사내아이가 '고독'이라는 인생의 속성을 파악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왠지 우울해지는 일이다. 어쩌면 조숙한 동생을 위해 막내 누나가 사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한 구절을 내 생각인양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당시의 나는 정말 골방 쥐 같은 존재였다. 어머니가 사주신 100권짜리 딱따구리 문고 몇 권을 빼들고 방 안에 들어가면 식사 시간 외엔 절대 나오지 않았다. 책을 읽다 심심하면 커다란 배터리가 칭칭 감긴 배불뚝이 라디오를 틀거나 몸을 긁거나 천장의 무늬에 집중하거나 몸을 비비적거리며 공중침대의 속삭임을 들었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나는 공상에 빠지곤 했는데 그때 나를 잡아 흔들었던 것이 마음의 무게에 대한 생각이었다. 영혼의 존재를 철썩 같이 믿었던 순진한 사내아이에게 마음은 뭔가 형체가 있어야 할 것이었고 당연히 무게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가슴 한편을 짓누르는 것이 마음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무게가 없다면 나는 어쩌면 일찌감치 어디론가 날아갔을지도 몰랐다. 좀머씨처럼 그때의 나는 나름 가벼웠고, 날 수 있다고 느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 내 몸과 마음의 무게가 같아지는 순간을, 그 해 어느 날 불현듯 느꼈었다.

바람 좋은 가을날, 잠시 잠깐 선잠에 빠졌던 나는 내 몸이 추락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키가 크는, 절벽에 떨어지곤 하던 꿈과는 분명히 달랐다. 이내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내가 공중침대에서 떨어졌음을 느꼈다. 온몸이 뻐근했으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마치 폐가 쪼그라들고 머리가 깨져 끈적끈적한 피가 작은 골방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1분, 2분, 3분, 그리고 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숨을 쉬지 않고도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내 몸이 공중침대 이상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이상한 경험이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내 생애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경험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내 마음의 무게가 형체가 사라지고 없음을 느꼈다. 나는 벽을 지나 누나들의 방을 지나 마당을 지나 어디론가 한참을 떠다니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참이나 행복했다는 것이었다.

요즘 나의 마음은 정말 무겁기 그지없다. 웃다가도, 울다가도, 문득 내 마음의 무게를 느낀다. 정말 몸의 무게에 마음의 무게가 더해져 중력을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신의 존재는커녕 마음의 무게 따위도 믿지 않는, 조금은 냉소적인 성인이 되어 있는 지금, 나는 자꾸 마음의 무게를 느끼는 내가 불편하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을 내 어린 시절의 집. 이제는 낡아 흉물스럽게 보이는 그 집이 자꾸 그리워지는 것은 내 학창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작은 골방 탓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차를 타고 옛집 근처를 지날 때면 뜬금없이 찾아가 내 그림자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그 위에 조용히 내 몸을 뉘어 보고 싶다. 정말 흐드러진 봄날의 꽃처럼, 미치도록 말이다.

 

/ 이현준(소설가 ․ 국문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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