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은 시네마 키드답게 과거 영화들을 차용하고 모방한 패스티쉬(pastiche;짜깁기, 혼성모방) 영화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를 만들었다. 패스티쉬 영화가 흔히 그렇듯 <다찌마와리>는 시종일관 가볍고 유쾌하다. 영화는 80년대 무협 활극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호방한 쾌남(?) 다찌마와리(임원희)를 포스터 전면에 내세워 관객으로 하여금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얼짱 꽃미남과는 거리가 먼 다찌마와리에게 연신“잘 생겼다”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영화는 뻔뻔함을 무기로 줄곧 관객에게 뻥을 친다. 자막 없이도 해석이 가능한 엉터리 외국어가 난무하고, 실제 불법 다운로드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첫 자막 작업이라 서툴러도 귀엽게 봐주삼. 무료배포는 구속^^”와 같은 멘트를 삽입하여 엉터리 외국어를 친절하게도 번역까지 해 준다. 한강 고수부지를 압록강이나 두만강이라고 우기며, “스위스 비밀은행 알프스 축협지점”,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를 간통죄로 규정하는 등 개연성이 부족한 언어유희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진상8호가 다찌마와리의 콧물과 침이 범벅된 분비물에 질식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도 연출된다.

  류승완 감독은 저급하고 촌스러운 영화적 장치와 화장실 유머를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이 영화에서 그는 오로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이와 같은 B급 영화 스타일을 차용하고 모방한다. 자본주의나 제도권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긴 블랙유머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감독은 영화 내내 고급문화가 지향하는 귀족적 취향이나 예술적 감각을 거부하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의 장면을 확대하고 과장하여 저급문화만의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이 영화는 과거 욕설이나 육담, 배설물과 같은 문학적 장치를 통해 서민들의 유쾌한 민중성을 확보했던 카니발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다찌마와리>는 변사와 100% 후시녹음을 통한 주인공들의 신파조 더빙과 같은 과거 영화 스타일을 차용하고, 한국과 홍콩의 무협 활극과 헐리웃 액션 영화를 오마주한다. 현란한 카메라 기법을 동원해 홍콩의 무협 활극을 오마주 한 만주 벌판의 액션 장면은 줄곧 유치하고 가벼웠던 영화 분위기와 달리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과거 영화를 차용하는 과정에서 감독은 저급한 유머를 통해 가까워졌던 관객과의 거리감을 더 이상 좁히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과거의 시간과 공간이 혼성 모방된 영화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조악한 과거 영화 기법이 사용됐다는 의미 보다는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패스티쉬는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해체함으로써,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 연속적 흐름을 거부하고, 원작과 모방이 서로 뒤섞여 무엇이 진품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과거 영화에 대한 모방과 차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다찌마와리>에서 과거 영화에 대한 모방과 그 모방의 흔적을 발견하기보다는, 모방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객과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장철이나 서극 영화에 열광했던 마니아들에게 <다찌마와리>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고 유쾌한 영화였지만, 과거 무협 활극에 대한 기억이 부재한 일반 관객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생경한 영화가 돼버렸다. 차용한 과거에 대한 기억 부재가 안겨주는 생경함으로 인한 의사소통의 불편함은 패스티쉬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이 영화는 패스티쉬가 지닌 취약점을 간과한 탓에 관객과의 의사소통에 결함을 보이고 있다. <다찌마와리>는 시네마 키드를 열광케 하고 시네마 키드를 위한 영화였지만, 일반 영화 관객과는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절반의 성공만을 거둔다.

/ 오현화(한림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