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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답다연극 <벽 속의 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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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동안 살아있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느끼는 때가 얼마나 될까? 일상의 분주함에 쫓기다 보면 삶이란 그저 번거롭고 고된 과제처럼 느껴지거나 때론 잠시 내려놓고 싶은 짐처럼 여겨지곤 한다. 세속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에 대해 성찰하고 생명에 대해 감사할 기회란 흔치 않다. 그런 우리에게 숨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살아 있는 일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한 편의 연극이 있다.
<벽 속의 요정>은 벽 속에 갇힌 한 남자와 그의 절망과 좌절을 껴안으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가치를 전하는 작품이다. 좌우익의 이념대립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빨갱이’가 된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벽 속에 숨어 살아야 했다. 어린 딸에게조차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없었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행상을 나간 사이 혼자 남겨진 딸을 외면할 수 없어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노래도 가르쳐주는 ‘벽 속의 요정’이 된다. 딸아이는 성장하면서 요정이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아버지는 갈라진 벽 틈 사이로 딸아이의 성장과 결혼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극의 말미, 사면 대상이 돼 40년의 유폐 생활을 마치고 밝은 세상으로 나온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당신이 여기 있기에 나도 여기 있어요. 살아있다는 건 아름다운 것,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정말 잘 한 것 같죠.”라고 노래한다.
2005년 6월에 국내 초연된 이 연극은 스페인 내전을 피해 40년 동안 벽 속에 숨어 살았던 한 남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일본의 작가 후쿠다 요시유키가 쓴 원작 희곡을 극작가 배삼식이 한국 상황으로 다시 번안했다. 원작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 내전은 번안본에서 식민지시대 말기부터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역사로 대치돼 한국인들이 실감하는 삶의 이야기로 전달된다. 극렬한 이념 대립과 동족상잔의 전쟁이라는 극중 배경, 유폐된 아버지, 연좌제에 걸려 노심초사하며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서사는 매우 무거운 소재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마치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을 배경으로 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관객에게 ‘웃음 속의 눈물’을 선사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베를 짜는 어머니와 아내를 돕기 위해 남몰래 수건을 뒤집어쓰고 베를 짜는 아버지의 모습을 번갈아 연기하는 희극적인 장면에서, 인생의 사막을 건너게 하는 힘은 사랑이라는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극단 미추의 대표 손진책이 연출한 이 연극은 배우 혼자 등장하는 ‘뮤지컬 모노 드라마’다. 김성녀는 텅 빈 공간에서 5살 어린아이부터 교복 입은 소녀,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 60대 노파, 남편, 건달, 경찰 등 1인 32역을 맡아 놀라운 변신을 보여주면서 ‘우리 시대의 여배우’라는 칭호를 다시 확인시킨다. 그의 변신 연기는 연령과 성별의 차이를 뛰어넘어 다양한 역할의 특징을 포착하고 정확히 표현하는 데서 관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악극 및 마당놀이, 뮤지컬 무대에서 갈고 닦은 그의 연기 내공은 감동의 원천이다. 또한 우리 민요와 러시아 민요 ‘스텐카라친의 노래’ 등 귀에 익은 선율을 바탕으로 한 12곡의 노래(김철환 작곡)는 극의 주요 이음새를 엮어 줌으로써 연극과 뮤지컬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는 찬사를 받았다. 사실 이 연극은 ‘모노 드라마’를 표방했지만 무대 뒤에는 그림자 인형을 조종하는 배우들이 존재한다. 극중에 나오는 그림자 극은 단조로운 극 형식을 한결 풍성하게 해주는 동시에 ‘긍정의 힘’을 이야기한다.
‘이래도 삶이 아름다운가?’라는 중얼거리는 사람들, 삶이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벽 속의 요정>을 꼭 봤으면 싶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되고 힘이 되어주는 누군가와 함께 볼 수 있다면 그 보다 좋을 수 없다.
/ 유인경(한림대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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