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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희망과 절망 속에서 낭만을 이야기하다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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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은 허우 샤오시엔과 더불어 80~90년대의 대만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거장 에드워드 양의 1991년도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14세의 주인공 소년 역을 맡았던 아역 배우 장첸은 이후 <와호장룡> 등의 작품을 거쳐 중화권을 대표하는 중견배우로 성장했다. 부서질 듯 섬세한 어린 소년의 감정을 슬픈 눈망울 속에 가득 담아 열연하고 있는 영화 속 꼬마 장첸의 모습은 완성된 지 20년이 돼 가는 이 영화가 제공하는 특별한 감회를 잘 대변해준다. 암울하고 슬펐던 60년대에 대한 대만인의 회고록이라 불리웠던 이 작품은 이제 영화 그 자체가 하나의 유물이 돼 흘러간 대만 뉴웨이브 시대에 대한 또 다른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수 년 전 홍콩국제영화제에 출장을 갔다가 함께 식사를 하게 된 홍콩, 대만 영화인들의 대화에 우연히 동참했던 기억이 난다. 소위 중화권으로 불리는 중국, 홍콩, 대만의 영화들 중에서 역대 최고의 작품이 과연 어느 작품인가를 두고 젊은 감독들과 유명 프로듀서들이 뒤섞여 즉석 토론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중국어권 영화 중 역대 최고의 작품으로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을 지목했던 것이 매우 인상 깊었다. 이 작품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경외감은 타락해 버린 대륙의 거장들에 대한 냉소와 무너져 가는 홍콩, 대만 영화산업에 대한 탄식만큼 강력하게 대화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영화적 스타일에서 너무나 상이한 작품들이지만 우리들에게 <친구>나 <살인의 추억> 같은 작품들이 제공했던 묵직한 정서적 감응을 이들 영화인들은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에서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은 60년대 초 대만에서 있었던 실제 살인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 졌다. 영화는 불안이 지배하는 사춘기 소년이 겪는 정신적 혼란을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 낭만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새롭게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통을 앓던 주인공 소년은 우정과 사랑의 열병 사이에서 번민하다가 결국 자신이 사랑했던 소녀를 살해하고 만다. 하지만 이 뜻밖의 살인조차도 아련한 노스탤지어의 정서가 지배하는 영화 속의 세계에서는 마치 동화의 한 자락처럼 느껴진다. 거의 4시간에 달하는, 정확히 237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은 낭만과 향수의 정서에 압도되고 공명하게 된다. 스스로 겪어 보지 않은 시대에 대해 절절히 사무치는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예사로운 경험이 아닐 것이다.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이 제공하는 감정의 밀도는 그 만큼 짙고 여운이 강하다. 작품이 만들어 진 이후의 십 수 년의 세월과 이야기의 배경이 된 60년대로부터 지나 온 그 오랜 세월들이 모두 무색해지리만큼...
2007년 타계한 에드워드 양의 마지막 몇 해는 순탄하지 않았다. 그가 만들려고 했던 작품들은 매번 난관에 봉착했고 수년간 진행해 온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중단된 상태였다. 결국 2000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하나 그리고 둘>이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대만의 영화산업이 처한 최근 상황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 영화의 부활 이전에 아시아 영화의 존재를 세계 영화계에 각인시켰던, 그래서 많은 한국의 영화인들이 한때 부러워해 마지않았던 대만 뉴웨이브의 영광은 그렇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속의 소녀의 죽음처럼 말이다.
/ 권재현(한림대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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