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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고적에 대한 낭만시에서 서체적 아방가르드로智弘 박봉수의 추상세계를 다시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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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사조를 수용하기 시작한 한국의 근대 동서양화가들은 1945년 해방,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도 한국 초기 추상미술의 기틀을 잡아나간다. 당시 화단을 이끌던 화가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수화 김환기, 유영국과 같은 작가들 외에 운보 김기창이나 고암 이응로, 지홍 박봉수와 같은 동양화가들이 전위의 선봉에서 맹위를 떨쳤다는 사실이다.
대상의 핵심만을 가장 기본적인 조형요소인 점, 선, 면을 통해 추려 낸다는 뜻인 ‘추상抽象’이라는 용어는 1950-60년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술로 나아가기를 희망한 우리 화단에서 가장 열심히 부르짖던 용어였다. 그러나 대상을 그 핵심만 추려내 그 본질을 전달한다는 것은 동양의 문인화가 이미 추구해온 경지였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동, 서양화가 모두가 ‘전위’라는 이름아래 적극적으로 이를 추구해 나갔다. 이 가운데 한국의 추상미술을 돌아보는 이번 특집에서는 칸딘스키와 몬드리안과 같은 서양의 작가들이 더 익숙한,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는 거의 잊혀진 생소한 작가, 지홍 박봉수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한국의 전위미술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한다.
지홍 박봉수는 1916년 6월 24일, 경북 경주시 사정동 124번지 국당마을에서 2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지홍의 본격적인 그림 입문은 1925년 10세 때 경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며 만난 일본인 교장, 오사카 긴타로(大坂金太郞)와의 인연에서 시작된다. 오사카는 1931년까지 교장으로 근무, 퇴직 후 경주박물관 분관 관장으로 지내며 경주의 고적과 설화들을 연구한 인물로 유명하다. 미술과 역사에 관심이 높았던 오사카 교장의 눈에 재능이 발견된 박봉수는 15세 되던 해인 1930년 교장선생님의 주선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전위미술을 본격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수묵화에 서양화의 사실성을 절충시킨 화풍만을 약 1년여 간 습득하고 귀국, 1935년부터는 만주와 중국 일대를 유랑한다. 1940년대 만주와 조선을 오가며 유랑하던 지홍은 해방 후 서울로 상경해 화업을 이어나가고자 하나, 한국전쟁의 발발로 경주로 내려와 1950년대와 60년대를 경주를 주 근거지로 해 활동한다.
당시 경주에는 전란을 피해 전국 각처에서 내려온 젊은 시인, 화가들로 북적댔는데, 경주에서 나서 자란 토박이였던 지홍은 더욱 사명감을 갖고 고적연구를 시작한다. 이 무렵 경주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이 모두 경주의 고적을 모티브로 한 전위적 작품으로 무너진 한국화단을 새로 부흥시키고자 노력했던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지홍의 경우 경주로 피난 온 예술가, 시인 외 향토학자, 그리고 사찰의 선사들과의 교유를 통해 고적과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다. 1950년대는 말년까지 지속되는 소재 및 화풍의 원형이 형성될 뿐 아니라 구상과 추상에 걸쳐 폭넓게 실험하는 중요한 시기다. 이러한 와중에 1950년대 후반부터 탁본을 하면서 경험한 두드리고 눌림을 통해 만들어진 종이의 질감을 살린 <고목의 전설>과 같은 독특한 추상 작품들이 제작된다. 또한 1950년대를 풍미한 아방가르드에 대한 열망 속에서 동양의 사상과 필묵의 전통을 추상으로 환원시키는 왕성한 작업을 진행시키는데, 수화 김환기와 고암 이응로는 지홍과 서로 겨루며 한국적 추상을 실험한 대표적인 작가들이었다.
실제로 이 무렵 수화가 <피난열차>와 같은 형상이 아직까지 명확히 존재하는 작품들을 제작했다면, 지홍은 이 무렵 이미 수묵의 선만으로 대상을 표현한 본격적인 수묵추상을 구사하고 있어 그 선구적인 전위성은 오늘날의 작가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새롭고 신선하기까지 하다. 생계문제와 해외로의 외유로 인해 1970년대 이후 이러한 추상작품들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게 돼 작고 후 근 20년이 흐른 오늘날 우리에게 잊혀진 작가가 됐지만, <범종>, <산기의 암소>, <저항>과 같은 1950년대의 주옥과 같은 작품들은 동양적 전통에서 서구의 조형언어인 추상으로 나아가는 발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마침 이러한 지홍의 추상세계를 둘러 볼 수 있는 좋은 전시가 3월 4일부터 1달간 서울 신사동의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홍의 <주작>(1940)과 같은 작품을 보면서 신년, 그리고 새로운 학기를 기운차게 시작하는 여러분들에게 비상의 에너지가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 황빛나(한림대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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