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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점 하나 획 하나에 담은 그리운 얼굴들한국 초기의 추상미술 2 - 김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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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서울에 온 마네와 모네, 그리고 피카소의 작품을 보셨나요?
2000년 이래 우리 수도 서울의 대표적인 국공립미술관들에서 열린 블록버스터 전시들만 꼼꼼히 챙겨보았어도 아마 마네와 모네는 물론이거니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이른바 서양의 모던 아트 거장들의 명화는 이미 섭렵한 듯한 포만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엄선된 양질의 코스요리처럼 보이는 최근의 초특급 전시들은 실상 편식단에 가깝다. 특히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한 편식이 가장 두드러진다. 추상미술을 포함한 전후의 현대미술이 제외된 상황에서 이러한 현상을 한국인의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울 듯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이 동시대 우리나라 화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어떠한 화가들이 무엇을 그려내고자 했는지 까지를 아우르는 균형을 유지해주기를 원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록적인 관람객을 동원한 전시들을 되짚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야기가 있는 서정적인 그림이 관객을 끄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표현하면 이야기를 끌어내기 어려운 이른바 ‘절제된’ 추상미술은 그만큼 공감을 얻어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작품 자체의 공감도 어려운데, 주변에 비평가들이 붙여 놓은 이론적인 수사들은 더욱 난해하다. 그래서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기가 어렵다. 우리의 정서상 무언가가 불편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추상미술 1세대라 할 수 있는 김환기, 유영국과 같은 화가들의 추상은 차갑고 비개성적인 기법을 연출한 마크 로드코 (Mark Rothko, 1903~1970), 클리포드 스틸(Clifford Still, 1904~1980)과 같은 동시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과 달리 화면에 시적 서정성이 충만하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서도 미술평론가 이경성 선생이 지적했듯이 항아리, 새, 달과 같은 우리의 전통 속에 녹아있는 미감을 주관화시킴으로써 추상에 접근한 수화 김환기의 작품은 ‘고귀한 격조와 단순한 품격’을 갖춘 한국적 추상의 일면을 보여준다. 특히 절제된 화면에 넘쳐흐르는 시정 때문에 혹자는 수화를 자연을 노래한 조형시인이라고도 평했다. 그래서일까? 김환기의 추상은 박수근의 인물상과 더불어 국민들의 폭넓은 공감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국민작가라 해도 무방할 김환기의 이력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가 산재해 있기에, 상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를 대신해 필자는 수화의 점 그림 중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통해 그가 구현하고자 한 ‘추상’의 일면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수화는 1956년 파리로 건너간 이래 1963년부터 1974년의 작고 시까지 뉴욕에서 거주하며 오랜 타지 생활을 거듭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인간적 고독 속에서 그가 재발견한 것은 전통적 조형미와 색․질감, 그리고 고국에 대한 애정이었다.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詩 정신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중략)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1957년 1월의 일기에 예고돼 있듯이 파리 시기 이후 수화는 푸른빛의 <산>, <달>, <항아리>와 같은 작품을 제작해나가며 자신만의 한국적 추상을 구축해 나간다. 1963년 뉴욕으로 근거지를 옮기며 더더욱 극심해진 향수병과 경제난을 감내해야했던 그는 전통적 소재에서 벗어난 새로운 점화의 형식을 통해 고국의 그리운 얼굴들, 그리고 산천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와중에 제작된 것이 친구 김광섭 시 <저녁에> 가운데 마지막 구절을 따서 제목을 붙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캔버스에 유채, 236x172cm, 개인소장)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시를 나지막이 읊조리며 수화의 점화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렇게 무수한 푸른 점들 속에 무엇이 담겨져 있을까. 그 외로운 타지에서 화폭 앞에 앉아 보낸 무수한 밤과 낮에 스치고 지나갔을 그리운 얼굴들을 나도 떠올려본다. 수화의 고향 전남 신안군의 푸른 바다와 고향의 부모, 그리고 고국에 두고 온 그리운 벗들이 송진유에 묽게 푼 청색 유채로 붓끝에 담겨 모두 다른 표정의 점이 되고 하나하나 정성스레 네모 속에 보듬어진다. 수화에게 있어 추상은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미처 쓰지 못하고 온종일 펜을 댔다 뗐다를 반복하다 점하나 찍어 보낸 편지와도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의 화려한 블록버스터 전시들의 틈바구니에서 반 고흐의 ‘별’ 못지않게 애잔하게 가슴을 울리는 우리의 소중한 무성시無聲詩들을 떠올려 본다. 과연 이들을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통해 다시 만나랴.
/ 황빛나 (본교 시간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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