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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드라마에서 고궁 뮤지컬로의 환골탈태뮤지컬 <대장금>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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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MBC에서 방영된 <대장금>(김영현 극본)은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국민 드라마’다. 흥미로운 추리와 복수 서사, 경쟁 구도를 통한 이야기의 재미는 이 TV 드라마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비천한 신분의 여성이 고초를 이겨내고 출세와 사랑을 성취한다는 영웅 신화를 재생산했다는 점도 <대장금>의 특징이다. 2005년 <난타>의 공연제작사 PMC는 한류(韓流) 열풍을 불러온 원작 드라마의 인기를 바탕으로 MBC와 함께 60억원을 투자해 뮤지컬 <대장금>을 공동제작했다. 익숙한 콘텐츠 하나를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을 따른 것이다. 2년간의 사전 제작 기간, 실제 공연과 똑같이 무대 리허설을 하는 트라이아웃(Try-Out) 과정, 창작 뮤지컬 사상 최고 제작비, 티켓 최고 가격(15만 원) 등으로 화제를 모았던 2007년판 뮤지컬 <대장금>은 아쉽게도 흥행에 실패했다. “54부작 드라마의 어정쩡한 축약본”이라는 혹평과 함께 작품성도 인정받지 못했다. <대장금>은 이런 참패를 딛고 2008년에 ‘고궁 뮤지컬’로 재기했다. 역사 뮤지컬인 <화성에서 꿈꾸다>, <공길전>, <명성황후> 등도 이미 고궁 뮤지컬로 선정돼 경희궁 숭정전 앞뜰에서 재공연된 바 있다. 하지만 <대장금>은 새 창작진에 의해 줄거리와 음악이 전면 수정된 신작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고궁 뮤지컬로 선보인 첫 작품이다.
원작을 뛰어넘는 뮤지컬로 인정받으려면 관객의 기대지평에 부응하는 신선함과 기발함이 창출돼야한다. 뮤지컬 초연 무대가 ‘러브 라인’을 중심으로 방송 드라마의 서사를 무대 문법으로 재연하고자 고심했다면, 고궁 버전은 좀 더 뮤지컬 장르의 특색을 살려 과감한 해체의 방법을 채택했다. 덕분에 장금이의 생애가 배우들의 노래와 움직임, 나레이션 등을 통해 기승전결을 갖추면서도 100여 분간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우선 전작과 비교할 때 역사적 배경의 변화가 눈에 띈다. 장금의 성공담에 힘을 싣기 위해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을 설파한 조광조와 그의 시대가 극중 배경이다. 장금과 민정호의 사랑, 최상궁의 모략에 초점이 맞춰졌던 이전 버전의 이야기 비중이 줄어든 대신, 중종을 보좌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신진 사림 조광조와 민정호의 개혁의지, 이를 반대하는 반정 공신 오겸호의 권력 대결이 전경화된다. 이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종의 유약한 내면과 실패한 개혁의 역사 앞에 선 서장금의 성장 드라마가 함께 그려진다. 뮤지컬은 선(이상)-악(현실)의 대결 구도라는 전형적 플롯으로 사건을 구성하되, 원작과 달리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고 만다는 장금이의 ‘업’이 추가되어 이색적이다. 이로써 자신의 업을 풀어내며 역경을 극복하려는 장금의 고뇌와 비장한 각오, 비범한 성장내력이 설득력 있게 표현되어 관객의 감정이입을 돕는다.
‘해결사’로 투입된 연출가 이지나는 무대만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에피소드 나열식의 드라마 전개를 탈피, 감각적인 이미지와 생략의 화법을 통해 이야기를 더욱 빠르게 전개시킨다. 퍼포먼스 내지 무용극처럼 묘사된 어선(御膳)경연 장면이나, 장금이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서 고급스럽고 풍성한 선율의 이지혜 작곡가, 격동하는 군무에 강점을 보인 안애순 안무가, 초연 멤버인 베테랑 오은희 작가가 긴밀한 호흡을 맞추었다. 그 결과 고궁 버전은 ‘퓨전 사극’에서 차용한 현대적 디자인 및 분위기, 프랑스 뮤지컬 같은 세련된 질감과 파격, 암전 없이 소품 및 일인다역의 앙상블 연기로 장면이 전환되는 마당극식 공간 운용, 운치 있는 궁전의 선을 강조한 조명 등이 어우러진 창작 뮤지컬로 탄생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걸 관통하는 핵심은 거의 노래와 음악으로만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형식(sung-through)의 극음악이었다. 테크노 음악과 랩으로 처리된 ‘소격서 혁파’, 한상궁의 죽음, 장금이 의녀로 거듭나는 과정은 음악의 추진력이 없었다면 간결하면서 역동적인 의미전달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뮤지컬 넘버 중 조광조, 민정호, 중종, 장금이 함께 부르는 ‘뜻을 높이 세우소서’는 극적인 선율과 극 내용을 압축한 가사가 조화를 이룬 빼어난 테마곡이다. 경희궁 숭정전을 위한 맞춤 뮤지컬로 부활한 <대장금>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9년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 최우수 재공연상, 제15회 한국뮤지컬대상 최우수 작품상, 연출상, 2009 대한민국 국회대상 등을 거머쥐며 작품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유인경 (고려대 BK21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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