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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덤 앤 더머의 엄마 찾아 삼만리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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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가 돌아왔다. 이번엔 기타노 다케시가 아니라 ‘비트’ 다케시다.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냉엄한 이미지의 그가 아니라 TV에서 볼 수 있었던 재치 있고 위트 넘치는 입담을 과시한 비트 다케시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기쿠지로의 여름>은 그가 TV에서 보여줬던 연기의 총 집합임과 동시에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의 초기작 <모두 하고 있습니까?>와 <키즈 리턴>만이 정서적으로 일정부분 유사성을 가질 것이다.
<소나티네>나 <하나비> 등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말없고 근엄한 그의 표정 연기는 이번 영화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그의 파트너인 꼬마 마사오에게 그대로 전수됐다. 통상 시끄럽고, 늘 들떠있어야 할 꼬마 마사오는 과묵하고 어쩌면 겉늙은 꼬마를 연기하고 있고, 다케시는 이전의 이미지를 지우고 TV 프레임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서로의 캐릭터를 ‘바꿔치기’ 하고 있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애 어른 ‘마사오’ 와 아이 같은 ‘기쿠지로’가 만나서 엄마를 찾아 나서는 설정은 <덤 앤 더머>의 <엄마 찾아 삼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한 과연 이 기묘한 여행에서 둘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제목에 힌트가 숨어 있다. <기쿠지로의 여름>. 일명 ‘마사오의 여행’ 같았던 이야기는 중반 이후로 치달으면서 기쿠지로의 여행으로 치환된다. 한없이 길어지는, 어쩌면 기쿠지로가 의도한 듯한, 여행 속에서 마사오는 결국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여기엔 기쿠지로의 의도적인 숨김이 있다) 기쿠지로만이 양로원에서 외롭게 사는 노모를 만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여행을 통해서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은 마사오가 아니라 철부지 어른 기쿠지로다.
백수로 빈둥거리다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 마사오의 보호자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기쿠지로는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진 켈리도 모르던 그는 어느 샌가 탭 댄스를 추게 되고 살기 위해서 수영과 운전 또한 배우게 된다. 결국 영화는 마사오의 일기장을 통해 그려진 일종의 기쿠지로의 성장기다. 또한 어쩌면 이 영화는 인간 기타노 다케시의 성장기일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사람들을 웃겼던 다케시의 삶은 영화에서 마사오를 웃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기쿠지로의 모습으로 변형되고 그러면서 다케시와 기쿠지로는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마사오와 기쿠지로가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름을 물어오는 마사오에게 퉁명스럽게 “기쿠지로”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기쿠지로의 표정 뒤엔 이제서야 자신의 자아를 찾았다는 일종의 안도감이 숨어 있다. 동시에 이 장면은 영화감독으로 혹은 연기자로 살아왔던 그의 삶에 대한 자문자답일지도 모른다. 무표정한 얼굴에 귀찮은 듯 말을 내뱉는 다케시를 상상해 보자! “난 ‘다케시’ 라구”
그동안 다케시의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 점은, 다케시가 그리는 폭력의 순환고리 혹은 사회에 유기된 남자들의 내면 같은 내용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를 다케시가 풀어가는 방식, 즉 형식적인 부분이었다. 그의 영화가 연극이나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하나의 미장센 아래에서 많은 숏트들을 생략해간다는 특징을 감안해도, 숏 들이 충돌하면서 덜컹거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러한 스타일이 그의 영화를 특징짓는 여백과 느슨함의 미학이라는 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지만 조금은 인위적이고, 영화가 주는 시각적 매력이 반감된다고 느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다케시는 감독으로서 한층 성숙된 미장센을 보여준다. 숏 들의 연결이 전작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졌고 어떤 장면들에서는 무척이나 ‘cinematic’ 해졌다.
특히 자동차가 출발하면서 길 가에 남아있는 마사오와 기쿠지로를 알루미늄 휠에 반사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숏을 만들어가는 그의 능력이 점점 무르익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유치찬란한 다케시의 종합선물 세트를 받아 들고 난 시종일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웃음의 마지막 순간은 영화의 맨 마지막에서야 다가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헤어지는 기쿠지로와 마사오의 모습에서 이젠 서로 정말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징후를 강하게 느꼈고, 그런 느낌은 어느새 가슴에 전달돼 정서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슬픔의 원천은 ‘평생 가장 행복한 여름을 보낸 마사오와 기쿠지로는 앞으로 과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집으로 돌아간 마사오는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기쿠지로는 부인의 구박에 쩔어 살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유쾌하고 행복했던 ‘그 여름’ 은 다시 올까?
/ 최인규 (본교 시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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