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에서 우리는 천안문에 세워진 공자상과 그 상징적 의미를 통해 현대 중국의 정치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우리 한림대학교와 연관이 깊은 중국의 신화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한림대학교가 위치한 곳은 鳳儀산이다. 여기에서 봉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 중의 하나인 상서, 즉 서경에서 나온 것이다. 서경 虞書 제4편 益稷 9장을 보면 마지막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簫韶九成, 鳳凰來儀(소소구성, 봉황래의), 뜻은 바로 연회에서 연주를 9번 마치고 나니 봉황이 나타나 그 자태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즉 태평성세를 이루고 음악이 완성되니 봉황과 같은 상서로운 동물이 이에 참여하여 그 뜻을 더 높였다는 의미로 참으로 아름다운 예악의 완성을 상징하고 있다. 봉의산이 구봉산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 지세가 서경에서 소소를 9번 연주하고 봉황이 자태를 드러내고 머문 곳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치세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예절과 음악의 완성을 상징하는 봉의산에 문인과 문사 즉 지식인들을 상징하는 한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본교는 듣기만 해도 참으로 절묘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봉황의 鳳은 원래 바람을 나타내는 風과 갑골문에서는 그 문자가 같은 것으로 봐서 봉황의 신화는 바로 바람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불의 화신으로 전해지기도 하며 춘추 전국 시기 楚나라에서는 불을 다스리는 축융의 후예인 자신들의 상징으로 봉황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관련 이야기는 바로 장자에서 나오는 鵬과 관련한 것이다. 붕의 한자는 鳳의 옛 글자로도 쓰였던 것을 볼 때 장자에서 언급되는 붕 역시 봉황과 같이 바람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라고 보면 되겠다. 그 유명한 장자의 첫 이야기인 소요유에 나오는 대붕의 이야기를 보면 곤(鯤)이라는 크기가 수천 리나 되는 물고기가 북명이라는 바다에 웅크리고 있다가 붕이되어 하늘을 날아오른다. 대붕의 뜻을 어찌 참새가 알겠는가? 라는 유명한 일화가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한림대학교도 또 이곳에 적을 두고 있는 학생들도 곤처럼 숨을 죽이고 있다가 언젠가는 붕이되어 하늘을 날아올라야 하지 않을까?
  
봉황은 맑고 깨끗한 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고, 상서로운 오동나무에만 머문다고 했으며 백가지 새들의 왕이요, 바람을 부르고 불을 다스리는 신성한 새이다. 안타까운 것은 한림대학교 내에는 오동나무 숲도 없고, 봉황이 마실 물도 없다는 것이다. 봉황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신화가 가득한 이곳의 이름과는 달리 교내에는 수많은 서구 신화 인물과 사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본교는 마치 수많은 신화를 모아 놓은 곳 같다. 심지어 학교를 상징하는 U. I(University Identity)에는 봉황의 상징물에 영문자를 적어 놓았다. 이런 부조화를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소요유의 자유분방한 신화와 상상의 날개를 뒤로 하고 장자의 두 번째 이야기 齊物論(제물론: 사물을 가지런히 하다를 논함) 과 관련한 논의가 이러한 부조화로 보이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제물론에서는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붕을 알아보고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시 서로 논쟁을 일삼던 유가와 묵가가 따지는 시시비비란 마치 대붕을 바라보는 참새들의 소리와 같게 보일 것이다. 즉 제물(사물을 가지런히 하다)이란 한 편으로는 자신들의 사상으로 세상을 가지런히 하려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를 알아보려면 바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해 보면 될 것이다. 자신의 침대에 사람을 묶어 놓고 키가 침대 보다 길면 손과 발을 잘랐고, 반대로 키가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몸을 늘였다는 이야기. 이 공포스러운 이야기는 바로 자신만의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을 비유하는 것이고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바로 제물론에서 언급되는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청말 章太炎(장태염)이 갈파하였듯이 제물론의 요점은 바로 不齊之齊(불제지제) 즉 가지런하지 않은 가지런함이야말로 진정한 가지런함이라는 것이다. 바로 있는 그대로 그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정하는 것, 산에도 높낮이가 있고 강에도 깊이가 다른데 그것을 어떻게 가지런히 하려고 한다는 것인가?  나의 주장은 열심히 해야겠지만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늘 기억한다면 겸손해 질 수 있을 것이고 비로소 나와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움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공자와 장자의 사상은 서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공자는 자신의 길(道)은 一以貫之(일이관지: 하나로 통한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제자인 증자가 “선생님의 길은 오직 忠恕(충서)일 뿐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忠은 자신의 착한 본성에 솔직하게 따르라는 뜻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기에 이러한 본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결국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恕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인간의 본성이 결국 모두 비슷하다는 것에 기초한다. 공자는 恕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고 해석하니 이것이 바로 유가 사상의 가장 근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忠이라고 하는 것은 내 자신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수양법이며 恕는 이러한 진솔 되게 자신을 이해하고 난 뒤에 어떻게 사람을 대하여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진솔 되게 자신을 이해하고 나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나를 알고 나면 나와 타인의 같은 점도 알게 되고 다른 점도 알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타인도 하고 싶어 하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은 타인도 하기 싫을 것이다. 그렇기에 공자는 "군자는 서로 절제하기에 서로 다르면서도 함께 할 수 있지만(和而不同), 소인은 자신과 같기만을 바라니 비록 같아 보여도 함께 화합할 수 없다(同而不和)"고 했다.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군자인 것이다. 이것이 장자가 이야기하는 不齊之齊와 결국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서로 다름을 인정해 주는 것, 결국 중국 사상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한림대학교 상징과 신화들의 부조화는 부조화의 조화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고 세상을 모두 획일화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획일화된 표준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거기에 순위를 매겨 보려고 한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서로 같은 면이 있으면서도 또 다르다는 것에 있다. 왜 서로 비교하고 자신은 낮고 남은 높다고 생각해야 할까? 왜 우리는 모두 한 가지 표준에 맞추어서 남을 그리고 나를 재단하려고 할까? 우리는 매일 매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잣대로 남을 재단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자. 내 모습이, 내 현실이 타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만나고 성장해야 할 것이다.
  
봉황은 그리고 붕은 모두 바람이다. 손으로는 잡을 수 없고 눈으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신화이다. 눈을 감아보자. 자신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내려놓고 세상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내려놓고 바람을 만나자. 남을 차별하지 말고 자신을 차별하지 말자. 바람에게 오동나무니 마실 물이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모두 인간들이 바람에 덧붙여 놓은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바람은 높낮이를 차별하지 않고 대지를 품고 날아오른다. 한림대 학생들은 바람이 내린 곳에서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또 하나의 바람이 되어 보자.

/ 양태근(중국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