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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당신을 위한 만찬 - '얼간이들을 위한 만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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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에 대한 이성의 역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감금의 역사로 17세기 말 프랑스의 나병 환자 수용소를 가득 채운 ‘광인’들, 전 유럽에서 행해진 ‘마녀사냥’, 배를 타고 한 평생, 이 마을 저 마을을 떠 돌아야 하는 ‘이동공간의 포로’,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라고 쓴 프란시스코 고야까지. 이성은 결코 비이성을 자신의 범주 안으로 들이려 하지 않았다. 반면, 피에로, 광대, 멍청이, 얼간이 등으로 표현되는 ‘바보’의 역사가 있다. 이 역사 안에서 비이성은 특유의 제어 불가능한 폭력적인 광기를 거세 당한 채로 이성에 의해, 이성의 곁에서, 이성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문제는 이 두 역사의 틈 사이에, 이성에게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비이성의 목소리가 종종 있었다는 점이다. 이 목소리들은 이성이 그어놓은 비이성이라는 범주 안에 뭉뚱그려져 표출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몇몇은 살아남기도 했다. 에라스뮈스의 저서 ‘우신예찬’에 등장하는 우신은 이렇게 외친다.
“왜 내가 오늘 이렇게 평소와는 다른 이상야릇한 옷차림을 하고 나섰는지는 당신네가 조금만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준다면 알게 됩니다. 귀라고 하더라도 당신네가 거룩한 설교를 들을 때에 쓰는 그런 귀가 아니라, 장터에서 돌팔이 약장수며 익살 광대며 어릿광대들 앞에서 곧잘 쫑긋거리는 그런 귀를 말이어요.”
비이성이 이성을 놀린다. 늘 천대받고, 무시 되고 감금되던 비이성이, 이제는 처지가 바뀌어, 이성이 쌓아 올린 가치들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비이성이 이성에게 전달하려던 ‘특별한 메시지’란 다름 아닌 ‘내가 빙 다리 핫바지로 보이느냐?’로 시작해서 ‘너나 잘하세요.’로 끝나는, 이성을 향한 조롱의 메시지다. 영화 ‘얼간이들을 위한 만찬’ 역시 이런 조롱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영화다.
팀(폴 러드)은 곧 결혼이 ‘하고 싶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애인에게 프러포즈를 해봐야 번번이 거절당하는 그에게 이번 승진은 성공과 결혼 두 가지 목표가 동시에 걸린 큰 기회다. 회사 간부들 앞에서 회심의 아이디어로 멋지게 발표하고 큰 인상을 남기지만 승진의 문턱 앞에선 그에게 조건이 하나 걸린다. 바로 회사 중역들을 위한 만찬에서 그들을 웃겨줄 ‘얼간이’를 한 명 초대해야 하는 것. 그것은 곧 팀의 승진을 위한 만찬이기도 했다. 도덕적 딜레마 속에 빠져 갈팡질팡하던 팀에게 베리(스티브 카렐)가 찾아온다. 아니, 팀이 느닷없이 뛰쳐나온 베리를 차로 받아 버린다. 차에 치이고 나서 엉뚱하게 보상을 해 주겠다고 말하는 베리는 팀에게 있어 최고의 얼간이었다.
스티브 카렐은 이 영화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엉뚱하고 발칙하고 바보 같지만 한편으론 여리고 마음 따뜻한. 어쩌면 그의 연기는 그가 주연한 드라마 "The office"의 연장선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자칫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는 캐릭터를 단지 표정 하나로 호감 가게 만들 수 있는 건 스티브 카렐만의 능력일 것이다. 그래서 회사 간부들을 위한 만찬에서 박제된 생쥐를 이용한 베리의 연설은 마음속에 깊숙이 와 닿는다. 단순히 연설된 내용을 떠나서 배우의 얼굴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힘 때문이다. 반면 만찬에 초대된 또 한 명의 얼간이 터먼(잭 가리피아나키스)은 베리와는 대조적인 캐릭터다. 베리가 순진무구한, 따뜻함을 가진 그래서 연약한 얼간이라면 터먼은 강압적이고 독단적이고 위험한 얼간이다.
‘오스틴 파워’와 ‘미트 페어런츠’를 연출, 제작한 ‘제이 로치’ 감독은 이 영화에서 두 개의 상반된 캐릭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서 베리와 터먼은 영화의 주제를 양분하지 않고, 하나의 점을 향해 수렴해간다. 두 명의 미치광이가 존재하는 이 영화의 특수성을 생각해 볼 때, 무게 중심의 양극화는 득이 아닌 해가 됨이 분명하다. 그래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베리의 노력이 역설적으로 터먼과의 안어울림음정 속에서 완성될 땐, 그들의 싸움은 더는 불협화음이 아닌 하나의 왈츠로써 다가올 수 있게 된다.
영화 ‘얼간이들을 위한 만찬’은 베리와 터먼을 통해 우리에게 농담을 던진다. “당신과 나중에 누가 터먼이고 베리일까?” 그리곤 그 답으로 영화 전반에 걸쳐 비틀스의 노래 ‘The fool on the hill'을 들려준다. 사실, 우리는 모두 언덕 위의 바보일 수 있다. 자신을 이성이라고 다른 누군가는 비이성이라고 규정하기 전에, 우리는 모두 언덕 위에 올라가 해가 지고 세상이 돌아가는 걸 바라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와 닮았다고 생각하는가? 이 영화에서 가장 정상적인 팀? 만찬의 간부들? 일단 언덕부터 올라가자.
/ 류명재(언론·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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