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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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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1.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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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의 가을은 없다’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주말날씨는 가을인지 겨울인지 구분 안되게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흐리고 조금은 춥게 느껴졌다. 거기다 춘천 쪽에서 역사기행을 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어서인지 더욱 날씨 탓을 하게 만들었다. 하여튼 버스는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정도 늦게 예정된 충청도로의 ‘역사기행’을 향해 출발했다.

  보통 ‘나들이’나 ‘여행’이란 단어 속에서 그려지는 모습들과는 다른 경험을 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필자는 역사기행을 따라 나서는 길이다. 약 2시간 반정도 버스를 타고 다다른 곳은 강원도 각 지역에서 출발한 참가자 모두가 모이기로 한 청원휴게소였다. 인원점검과 일정에 대한 사전숙지를 마치고 버스 3대는 충주의 ‘탄금대’로 향했다.

‘감자꽃’ 노래비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가 전사한 곳으로 유명한 충주 탄금대는 역사기행이후 필자에게는 ‘감자꽃 노래비’가 있는 곳으로 더욱 기억되고 있다. 입구에서 탄금대로 향해 걸어가다 보면 권태웅 시인의 감자꽃 노래비가 있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귀에 익은 동요라는 데 필자는 처음 듣는 동요였다. 일제말 감옥생활로 병을 얻어 아픈 몸으로 해방기에 귀한 동요를 남기고 한국전쟁 중에 목숨을 읽은 시인 권태웅의 대표적인 시로 맑은 동심의 소박하고 진솔한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고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는 만물의 이치를 아이들은 알고 있는데 그것을 말로는 가르치는 어른들은 과연 그렇게 느끼고 행동하고 있는 지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박준성 교수님의 부연 설명은 주위에 모여든 참가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했다. 필자는 감자꽃이란 시를 읽으며 요즈음 자주 언급되고 있는 ‘초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天思不如一行’

  탄금대를 떠나 화양유스호스텔에 도착하여 짐들을 풀어놓고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 후 역사학연구소 박준성 교수님의 ‘슬라이드로 보는 노동운동사’ 강의가 있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로 접하는 강의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역사기행으로 아이들과 함께 한 가족단위 참가자들이 많아서 강의가 제대로 진행될까 걱정스런 마음이었는데 강의시간동안 민주노총 상근자들이 아이들과 함께 하고 어른들은 강의를 들었다.

  조합원 가족과 함께 하는 강의는 처음이라는 교수님의 첫인사를 시작으로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슬라이드와 함께 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역사 변화 발전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의 역사요, 희망의 인식, 희망의 실천으로서의 역사였다는 교수님의 강의 속에서 참가자 모두의 가슴속에 들어온 슬라이드 한 장면은 수덕사에서 정혜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만공스님을 추도하기위해 세워진 만공탑 뒷면에 새겨져 있는 ‘天思不如一行’이라는 문구였다.

  ‘천 번 생각하는 것이 한 번 행하는 것보다 못하다’ 박준성 교수님은 현재의 우리는 역사속 ‘그때 거기’서 살았던 선배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지금 여기’서 돌이켜 보면서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모색하며 실천을 통해 역사와 미래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덧붙여 그러한 실천은 민주노총에 소속된 조합원만이 아닌 조합원 가족들 또한 함께 해야 한다는 말씀도 있었다.

‘역사의 물결따라, 민중의 함성따라…’

  다음날 서원대 김정기 총장님과 사회보험노조 조합원이며 춘천시 문화재 전문위원인 홍성익 님의 설명을 들으며 참가자들은 상당산성을 둘러보았다. 상당산성은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조선시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있던 국방의 요충지였고, 동학혁명 때 동학군이 이곳을 공격하다 패퇴한 민중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했다.

  상당산성을 떠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당으로 향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을 향해 걸으며 참가자들은 양심수 후원회 역사기행 팀과 만났다. 양심수 후원회는 이후 노근리로 향한다고 했다. 1936년 뤼순 감옥에서 옥사하신 단재 선생의 유해를 어린 시절에 살던 옛집터에 안장한 곳이 현재의 사당이라 했다. 묘정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오세창, 신백우 등과 함께 세웠다는 묘표와 1972년에 세운 사적비가 있었다. 독립운동 때의 ‘反이승만’ 전력으로 이승만 정권이후 단재의 묘소만 초라하게 유지돼오다 1978년에야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점심식사 후 참가자들은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생가와 문학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벽초 선생은 일제시대 고향 괴산에서 충북 최초로 3.1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최대의 항일운동 단체인 신간회의 결성을 주도한 항일독립투사였다. 또한 1928년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10여 년에 걸쳐 조선시대 하층민의 저항과 생생한 삶의 묘사를 통해 근대적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전형을 제시한 소설 ‘임꺽정’을 집필했다고 한다.

  생가는 폐가와 다를 바 없었다. 생가 앞에서 김정기 총장님은 벽초 선생의 항일투쟁과 문학가적 업적은 48년 월북하여 1950년 북한의 부수상까지 재임한 이유로 인해 남한에서의 선생의 객관적 평가를 막았고 그 가족들에게는 ‘침묵과 어둠의 멍엷를 짊어 지웠다고 했다. 폐가와 다름없이 관리되는 벽초 선생의 생가는 이 모든 것을 응축해서 보여준다고 했다.

  생가를 떠나 ‘제월대 광장’에 세워진 벽초 선생의 문학비로 갔다. 벽초 어록에서 따온 신영복 선생이 쓴 문학비 비문에는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벌 빌려입지 않고 순 조선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라고 써 있었다. 1998년 민간에 의해 세워진 문학비에 얽힌 우여곡절을 김정기 총장님이 설명하며 ‘임꺽정’을 꼭 사서 읽어 볼 것을 참가자 모두에게 당부했다.

  제월대 벽초 선생의 문학비 기행을 끝으로 참가자들은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나눠탔다. 어디를 여행하다 비문이나 비석을 보면 앞만 보지 말고 옆과 뒤도 눈여겨 살피라했던 박준성 교수님의 말씀, 다음에 충청도에 오면 꼭 연락하라며 소주 한 잔 사시겠다던 김정기 총장님의 ‘임꺽정’을 통해 표현됐던 그리고 꿈꿔졌던 민중들의 삶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말씀을 새기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춘천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감자꽃’이란 시와 ‘天思不如一行’의 문구가 반복되듯 필자의 머리 속을 맴돌았다.

/ 여주천(춘천내일신문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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