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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견문록] ‘태양의 눈물’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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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3  19: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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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아시아에서도 태양이 가장 먼저 뜨는 나라

‘태양의 제국’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지난 1989년에 개봉된 작품으로 중일(中日)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4년 뒤, 숀 코너리가 주연한 영화, ‘라이징 선’(Rising Sun)이 상영됐다. 패망 뒤, 50년 만에 더욱 강력해진 모습으로 부활한 일본의 경제 침략을 경고하는 범죄 스릴러였다.

식민 시절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아직도 가슴 철렁한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의 나라. 더불어 잊혀질 만하면 한 번씩 불거지는 일본 정치가들의 망언(妄言)이 한국인들을 가슴 아프게 하는 나라. 그런 일본은 누가 뭐래도 태양을 숭배하는 ‘태양의 제국’이다.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天照大神)가 일본을 열었기에 일본인들의 소원 역시, 죽기 전에 그녀의 사당이 있는 이세진구(伊勢神宮) 신사를 방문하는 것이고.

사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도 해가 제일 먼저 뜨는 ‘태양국가’다. 서울과 같은 기준시를 사용하고 있는 도쿄(東京)의 경우, 경도상으로는 서울보다 8도 정도 동쪽에 있기에 일출(日出)도 30분 정도 일찍 시작된다. 하지만, 그런 ‘태양의 제국’을 곁에서 지켜 보노라면 ‘태양의 후손’이기에 감내(堪耐)해야 할 일본인들의 슬픔이 열도(列島) 곳곳에 말라 붙어 있다. 햇살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애니미즘에 기원한 태양신 숭배 사상이 국민들의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하며 언제나 그들의 희생만을 요구해 온 까닭에서다.

역사 이래 태양 숭배 사상은 민중의 고통과 희생 강요

한국인들에게 있어 태양은 달님이 된 누이의 오빠이며 그리스인들에게는 젊고 수려한 아폴론이었지만, 일본인들의 태양은 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멀고 혀가 굳는 외경(畏敬)스런 존재였다. 한국의 태양은 또, 햇볕과 햇살, 햇빛과 햇발을 훗훗하게 나눠주는 살가운 대상이지만, 일본의 태양은 ‘히자시’(日指-햇살)와 ‘닛코’(日光-햇빛)만 앙칼지게 쏘아대는 몰강스런 여신(女神)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오히사마(御日様)로 불리는 일본의 태양과 한국의 ‘해님’이 주는 어감(語感)은 천지차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3대(代)가 덕을 쌓아야 비로소 남향(南向)이 깃든 집을 얻을 수 있다’며 볕을 귀하게 여겨왔는데, 태양의 제국에선 그런 햇볕이 부담스럽기만 했나 보다. 해서, 여름이면 「서유기」속의 화염산 같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일본 본토에서 정남향 주택은 의외로 인기가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선글라스 역시,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 자칫, 태양을 부정하는 불손(不遜)으로 오해될까 몸조심하는 것이라면 이는 필자만의 지나친 생각일까? 하지만, 그런 태양 숭배 사상은 결국, 영원한 제국을 꿈꾼 천황과 신민(臣民)들에게 헛된 망상을 불어넣음으로써 아시아인들은 물론, 자국민들에게도 엄청난 비극을 안겨 준다.

돌이켜 보면, 유사 이래 태양을 숭배해 온 민족은 비단 일본만이 처음은 아니다. 가깝게는 인도에서부터 멀리는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지구 곳곳에서 아득한 옛날부터 태양을 찬미하며 신으로 숭배해 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수많은 신들 가운데 태양신을 국조(國祖)로 내세운 왕조는 인민들의 무조건적인 충성과 대가 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공통점을 보여왔다. 이집트가 그러했고, 아즈텍이 그러했으며, 잉카와 마야 문명 모두 만인지상 일인지하(萬人之上 一人之下)의 절대왕국을 꿈꿨던 점에서 예의 비극이 시작된다. 그런 면에서, 가혹한 노예제와 인간 제물 의식, 대규모 순장(殉葬) 등은 태양 숭배가 드리웠던 죽음의 그림자였다. 우리에게 시조(始祖)나 다름없는 곰은 웅담과 발바닥까지 바치며 한국인들을 위해 죽어가지만, 열도에서는 만백성이 ‘태양신’을 위해 죽어가야 했다.

여러 태양 국기 가운데 가장 섬뜩한 일장기

사실, 일본의 태양 숭배는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제정일치 시대의 유산인 태양신 숭배 사상이 아직껏 유효하다는 것 자체가 교조적(敎條的)인 시대 정신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년에 한 번씩 옆 터로 옮겨 짓는 이세진구(태양의 여신 신사)의 식년천궁(式年遷宮) 행사는 국가적인 관심 속에 치러지곤 한다. 더불어, 매년 600만 명이 평생의 소원을 달성하는 이세진구 방문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한 운명을 짐작해서일까? 필자가 살펴본 191개국 가운데 태양을 국기에 그려 넣은 나라는 필리핀, 튀니지, 그린란드 등 모두 17개국에 달했지만, 흰 바탕에 태양만 덩그러니 그려 넣은 국가는 일본이 유일했다. 물론, 방글라데시의 경우에는 초록 바탕에 빨간 원이 있지만, 이는 자유를 위해 흘린 피를 상징하고 있으며, 파란 바탕에 노란 원이 있는 팔라우의 국기에서 노란 원은 달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태양을 국기에 자주 그려 넣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식민 탈출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자유의 상징’으로 태양을 간주하고 있으며, 건국 이념에 해당하는 상징물도 함께 그려 넣는 경우가 많다. 한데,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자국 국기에 햇살은 물론, 태양의 눈, 코, 입 등 얼굴까지 그려 넣고 있으니 일본인의 입장에서 볼 땐, 불경(不敬)과 불손(不遜)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느끼는 일본 태양은 강렬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작열하는 만세일계(萬歲一系)의 독재 이념이 도도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이자 전 문화부 장관인 이어령은 그의 명저,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일장기(日章旗)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비판했지만, 이는 천만의 말씀. 일장기에는 어떠한 희화적인 도안이나 친화적인 밑바탕도 생략한 채, 지상을 시뻘겋게 달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의 전제주의가 내재돼 있다. 그런 태양이 열도(列島)에 비추노라면 섬나라 민중들은 갈증에 허덕거리며 납작 엎드리게 마련이다. 한데, 북한에서도 김일성 과 김정일을 ‘민중의 태양’이라 부르며 태양과 동격화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태양 숭배 사상이 민중들의 고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긴 한 것 같다. (참고로, 북한의 최대 명절은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 ‘태양절’이며, 김정일의 경우 태양이 들어간 호칭만 50개 이상이라고 한다.)

1400여 년 전. "해가 뜨는 곳의 천자가 해가 지는 곳의 천자에게"라는 서신을 중국 수나라에 보냄으로써 일본인들에게 무한한 자부심을 불어 넣었다는 쇼토쿠(聖德) 태자. 하지만, 정작 그런 그도 태양 숭배 사상이 자국 국민들을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운명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 심훈(언론ㆍ부교수)
 
 



 
1. 우루과이의 국기와 일장기. 햇살과 함께 친근하게 의인화된 얼굴이 단순히 빨간 원만으로 이뤄진 일장기와는 확연히 대조된다.
   
 3. 제국주의 당시, 일본은 곳곳에 태양을 상징하는 날 ‘일’(日)자 형태의 건물을 지었다. 지금은 헐리고 없는 경복궁 앞의 조선총독부 역시, 하늘에서 보면 ‘일’(日)자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사진은 도쿄 록본기(六本木)에 위치한 국립신미술관 내의 옛 일본 육군 제1사단 보병 제3연대 기숙사 모형. 날 ‘일’(日)자 형태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국립신미술관은 보병 제3연대 기숙사가 있던 부지에 들어섰기에 공지(公知) 차원에서 마련된 전시물이다.
   

2. 아직도 제국주의 당시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상품들. 도쿄(東京) 오다이바(お台場)의 어느 놀이시설 안, 매장 내에 마련된 트럼프들이다. ‘욱일승천기’를 도안으로 활용한 상품들이 곳곳에 진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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