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동 (방송통신 교수)

멕시코에 갔다. 챙 넓은 모자, 사보텐, 데낄라, 사막과 뜨거운 태양. 내가 아는 멕시코는 생각해 보니 주로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파편적인 이미지가 고작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도 멕시코의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도착지는 중부 멕시코에 있는 셀라야의 셀라야 대학이었다. 초청을 받아 5일간 체류하는 동안 두 차례 강의를 진행하고 매일 여러 학과 교수들을 만나 상호 협력 방안을 설명, 논의했으며 여름방학을 이용해 우리 대학에 국제하계대학 오겠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도 열었다.

셀라야 대학은 이 도시에 있는 열 개도 넘는 대학 가운데서 가장 크고 좋은 대학 중 하나다. 학생 수는 3천 명도 안되지만 의대도 있고 경영, 커뮤니케이션, 심리, 식품영양, 법학, 공학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전공들이 있다. 이 대학은 한국의 좋은 대학과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나를 초대한 근본적 이유도 그곳의 학생이 우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우리 대학의 교수가 셀라야에 방문하길 바라서였다. 공동학위제 시행, 교환학생 활성화 등 이번 방문 중에 구체적인 교류 계획에 대해 많은 진전을 보고 왔다.

멕시코는 한국인에게 거리뿐만 아니라 마음에서도 한참 먼 나라다. 보통의 한국인에게 멕시코는 별 이미지가 없다. 땅덩어리가 남북으로 20시간 차를 타고 달려도 닿지 못할 만큼 크고 인구가 1억 2천만에 육박하는 큰 나라인데도, 브라질과 함께 남미를 대표하며 국제 경제에서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강국인데도, 수천 년 아즈텍 문명과 3백 년 스페인 식민문화가 복잡한 두께로 착종된 독특한 사회인데도 왜 우리는 이 나라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을까?

처음 밟은 멕시코 땅에서 나의 무지와 제한된 관심만을 확인하게 되다 보니 스스로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멕시코뿐만 가까이는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대다수 나라에 대해 우리가 배우거나 들어볼 기회는 많지 않다. 한국 사회의 편식적인 국제관은 글로벌을 외치는 오늘날에도 좀처럼 깨질 기미가 없다. 그나마 관광업자들의 새로운 여행지 개척으로 단체 관광과 같은 기회가 많아진 것이 다행이라 해야 할까.

세상의 여러 문화와 사회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기관의 사명이다. 점점 더 공동운명체가 돼가고 있는 오늘날 그 사명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글로벌 인재를 만든다고 모든 대학이 법석인데 그 내용은 아직 너무 부실하고 약속은 공허하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이 갓 쓰고 한복 입은 한국인들을 상상하고 인천에 내린다면 아마 몹시 황당할 것이다.

멕시코에서 챙 넓은 모자도, 사보텐도, 사막과 뜨거운 태양도 보지 못했다. 그 대신 유럽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수백 년 된 성당들, 돌로 닦아 놓은 고색창연한 도심의 도로들, 감미롭고도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마리아치, 여기에 너무나 맛있는 타코와 향기로우면서 강한 데낄라.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는 여로의 피곤함을 날리며 한국인의 좁은 국제관을 깰 수 있던 축복은 아니었을까.
/ 김신동(방송통신ㆍ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