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라면 모름지기 모든 학생에게 고루 마음을 나눠 줘야 하겠지만, 선생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먼저 가는 학생이 있다. 지난 학기에 분명히 수업을 들었는데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학생과 내가 못 본 것 같으면 다시 앞으로 와서 인사를 하는 학생 중 어느 학생에게 마음이 가겠는가? 쉬는 시간에 칠판을 지우고 있는 동안 맨 앞에 앉아서도 멀뚱멀뚱 쳐다보는 학생과 강의실 뒤쪽에 있다가도 달려나와 지우개를 빼앗아 들며 자기가 지우겠다고 하는 학생 중에는 어느 학생에게 마음이 가겠는가?
요즘 들어 부쩍 이런 사소한 일들에 신경이 쓰인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만 있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답이 쉽게 나오는 일들이다. 내가 한마디 해서 잘못된 행동을 고쳐줄까 싶다가도 한편으론 다 큰 대학생들인데 내가 이런 것까지 잔소리해야 되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계속 생각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국어국문학과에서는 4월 초에 3박 4일간 남도로 답사를 다녀왔다. 첫날에는 식당에 들어와 자기 밥 먹기 바쁘던 학생들이 마지막 날이 되니 다른 사람 자리에 수저를 놓고 빈 잔에 물을 따르고 있었다. 휴게소에 내리면 자기 먹을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양손에 들고 버스에 오르던 학생들이 나중에는 기사님께 드릴 음료수를 챙기게 됐다. 남도의 봄꽃도 아름다웠지만 그보다도 하루하루 지날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우리 학생들이 더욱 예쁘게 보였다.
단 사흘 만에 학생들이 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 올라오는 차 안에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같이 있는 사람과 친해지고 그 사람에게 애정이 생기면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생기고 배려하는 행동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이런 게 몸에 배게 되면 어디 가서도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답사 마지막 날, 재학생 중에서 유난히 다른 학생들을 잘 챙기고 답사 기간 내내 분위기를 띄우며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해준 학생이 일어나 소감을 말할 차례가 됐다. 신입생일 때는 불만이 많아 계속 툴툴거리면서 다녔었는데, 이번에는 아주 즐겁게 지내서 좋았다고 했다. 그 학생이 신입생일 때에도 선배들이 나름대로 챙겨준다고 했을 터인데, 그보다는 자기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남들을 챙기고 다닐 때 즐거움이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사소한 배려가 일으키는 감동의 물결은 다른 사람에게 먼저 가 닿지만 결국은 자기에게도 돌아오게 된다.
남을 배려하는 행동은 책을 보고서는 절대로 배울 수가 없다. 동기이든 선후배이든 다른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저절로 익히게 되는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는 것도 좋지만, 정말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야 한다. 대학 시절 내내 도서관에 박혀서 혼자서만 공부하던 사람이 사회에 나간다고 갑자기 대인관계가 원만해질 리 없다. 어쩌면 대학 생활은 남을 배려하는 행동을 몸에 익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부디 우리 학생들이 사소한 배려로 다른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 신서인(국어국문ㆍ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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