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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견문록]우리들의 일그러진 안방 교육사서삼경이 국-영-수로 바뀌었을 뿐 농, 공, 상, 천대 풍토는 여전한 세상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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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09  11: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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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대들, 정말 문제 많아요. 아무도 건설 현장에서 일하려 하지 않아요. 대신 동남아에서 온 젊은이들이 기술을 배워 오히려 우리 젊은이들을 데리고 일하는 경우도 있어요.”
몇 년 전, 필자가 사는 집의 화장실 공사를 벌인 적이 있다. 화장실벽 안에 물이 새면서 화장실 주변의 벽지에 곰팡이가 슬어 할 수 없이 시행한 공사였다. 당시, 공사를 맡았던 인테리어 사장은 “젊은이들이 대우 좋고 편한 직장만 찾으려 한다”는 푸념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될 지가 정말 걱정”이라고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3D 업종을 기피하는 현상이 오죽 심했으면 대통령까지 나서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변했겠는가?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과연 우리들은 지금의 20대만 일방적으로 나무랄 자격이 있을까?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식이 3D 업종에서 근무하도록 권유하지 않는 게 현실인데. 아니, 3D 업종에서 근무하겠다는 자식 앞에서 오히려 “왜 사서 고생하느냐?”며 말리는 게 우리들의 참모습일 터인데. 하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왜, 무엇이 잘못됐을까?
  
수십, 수백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교육’에 있다.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신성한 교육이 명문대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우리들의 일그러진 안방 교육’ 말이다.
  
중세부터 5백 년에 거쳐 완벽한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선에서 유학(儒學)은 지고(至高)한 도덕규범이자 지순(至順)한 실천 강령이었다. 하지만 그런 유학이 세기를 거쳐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변질하면서 예의 비극이 시작된다. 안방 학문에 대한 지나친 편중이 다른 가치들을 질식시키며 농(農), 공(工), 상(商)을 압살하고 만 것이다. 그런 가운데 갈수록 문약해져만 간 조선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정묘호란 등의 재화(災禍)를 끊임없이 겪으며 종국에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문제는 그런 조선의 역사가 현대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손으로 어루만지기보다 눈으로 읽고, 망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영어 발음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교육으로 부활했다는 것이다. 사서삼경(四書三經)에서 국(國), 영(英), 수(數)로 교과목만 바뀌었을 뿐, 안방 학문 자체의 가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얘기다. 자연히 거름 주고, 못질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농(農), 공(工), 상(商)의 바깥 교육은 멸종하다시피 한 게 우리의 현주소다.
  
돌이켜 보면,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초등학교에는 학생들이 가꾸는 꽃밭과 함께 토끼 등을 키우는 토끼장이 있었다. 이와 함께, 일반 중, 고등학교에서도 ‘농업’과 ‘공업,’ ‘기술’과 ‘상업’이라는 과목이 존재했었다. 물론, 대부분 현장 실습 없이 교과서를 통해서만 배워야 했던 반쪽짜리 바깥 교육에 불과했지만······. 덕분에 필자 같은 문과생도 쇠를 깎는 선반과 자동차의 피스톤 구조 및 크랭크에 대해 어렴풋이 접한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니 ‘기술’ 과목의 기말 과제였던 나무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낑낑거리며 설계 도면을 작성하고 톱질하면서 못을 박았던 추억도 남아 있다. 하지만 특목고와 명문대 진학 중심으로 교육 체계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어느덧 그 같은 실습 과목들은 깡그리 자취를 감춰버렸다. 실제로, 몇몇 특목고에서는 이중(二重) 시간표를 통해 체육이나 음악, 미술 같은 과목마저 전부 국, 영, 수로 돌리고 있다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못질 하나, 망치질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우리네 자식들이다. 그러한 자식들은 결국, 집 안에 못 하나 박지 못한 채 전기가 과부하로 끊어져도 핸드폰을 통해 문의하는 바보들이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일본에서 아직껏 행해지고 있는 실습 위주의 ‘바깥 교육’은 부럽다 못해 질투심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 필자가 일본에 거주했던 1년간, 필자의 아이들은 학교와 지역 축제, 캠프와 기업 전시관 등에서 숱한 공작 체험을 경험할 수 있었다. 태엽의 속성을 이용해 음악을 들려주는 오르골의 상자 제작에서부터 유리잔 공예를 거쳐 연필꽂이와 장바구니 제작 등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자신의 방에 장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손으로 만들며 얻는 즐거움은 입으로 먹으며 경험하는 만족감과 함께 가장 원초적인 쾌락에 속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 조립식 장난감을 만지며 느꼈던 행복감, 더불어 미니어처를 완성한 후 즐겼던 성취감이 아직껏 손끝과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바깥 교육은 어려서부터 손으로 다듬고 눈으로 대중하며 귀로 가늠하는 오감(五感) 교육의 즐거움을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안겨주고 있었다. 주중이면 학교에서, 주말이면 도심 여기저기에서 다양하게 진행되는 공작 체험은 역시 ‘일본이 괜히 선진국이 아니구나’하는 부러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돌이켜 보면 안방 교육의 폐해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에 납치됐다 돌아온 유학자 강항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이미 4백 년 전에 꿰뚫어 본 학자였다. 그의 저서, 「간양록」을 통해 강항은 “비록 오랑캐의 나라지만 일본의 제도 가운데 우리보다 우수한 부분은 수용해야 한다”며 일본의 군사 제도와 관리 임용, 성읍 제도 및 기술 우대 풍조 등에 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반면, 17세기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신유한은 열도의 바깥 교육을 간과한 또 다른 우리 모습이다. 일본 문사들과 필담을 나눈 자신의 글이 일본에서 간행된 「봉도유주」에는 조선의 종이 제작 원료, 거문고 및 생황 제작, 비문 탑본 뜨는 법, 외국어 번역 노하우 등과 같이 실용적인 것들이 다수 소개돼 있지만 신유한 자신이 조선에서 펴낸 「해유록」에서는 정작 그와 같은 필담들이 실종된 채 기행을 중심으로 한 시(詩)와 문(文)이 주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한, 일 양국 간의 문화적 배경이 이처럼 다를진대, 한 신문사에서 몇 해 전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는 당연하다 못해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당시, 한ㆍ중ㆍ일 3국의 최고경영자(CEO) 150명을 대상으로 전공과 학력, 나이 등을 분석한 결과, 중국은 60%, 일본은 38%가 이공계 출신이었던 반면, 한국은 경영ㆍ경제 전공자들이 49%에 달했으며 이공계는 2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들어 무섭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역대 총리들이 모두 이공계 출신이라는 사실도 심상찮게 눈에 들어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참고로, 리펑(李鵬)은 장자커우 공업 전문학교, 주룽지(朱鎔基)는 칭화대 전기과, 원자바오(溫家寶)는 베이징 지질대학 광산학, 시진핑(習近平)은 칭화대 공정화학과를 각각 졸업한 공학도들이다.
학교에서 바깥 교육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와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미술관과 박물관, 기업체 전시관과 지역 축제 등에서 공작과 관련된 체험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선 눈을 씻고 둘러봐도 그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부터 국, 영, 수만 남겨놓고 다른 새싹들은 모조리 잘라 버린 우리들이 “요즘 젊은이들은 돈 되는 편한 곳으로만 몰려가려 해서 문제야”라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진 1
일본에 체류한 1년 동안 필자의 아이들이 소학교와 각종 행사장에서 직접 만들었던 물건들. 연필꽂이에서부터 시계는 물론 유리컵과 오르골 상자 등 다양한 수공예품들이 눈에 띈다.

사진 2
서울의 여의도에 해당하는 도쿄 오다이바에는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도요타 자동차의 '메가웹' 전시장이 있다. 사진은 '메가엡' 전시장 안에 마련된 전기 자동차 조립 장면.
핸들과 바퀴, 배터리 등을 장착한 후, 전시장 내부의 주행 코스를 한 바퀴 도는 이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기술 교육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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