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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책 한 권]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맴도는 한 이야기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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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8.25  17: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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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오후 학보사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학생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책 한 권을 추천해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것으로 이해를 했다. 평소 나답지 않게 선뜻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며칠 후 기자가 보낸 메일을 보니 글 주제는 ‘학생들에게 권하는 책’이 아니라 나에게 영향을 준 ‘내 생애 책 한 권’이었다.
  
애초 전화를 받았을 때 생각했던 책은, 축구선수 이영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라는 책이다. 이영표 선수의 열렬팬 이승국이라는 학생이 런던의 이영표 선수를 찾아가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 그를 기록한 책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일기장, 공책, 메모 등이 그대로 복사돼 책에 나타나는데, 이영표의 성실함과 열심, 꼼꼼함, 철저한 계획과 연습, 그리고 기도와 감사 등 본받을 만한 이야기들이 참 많다. 그 책은 이 삼 년 전에 출판됐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내 생애 책 한 권은 무엇일까? 유명한 수학 참고서일까? 재미있자고 한 말은 아니다. 나는 고교 시절 수학 문제를 보면 그 문제가 어떤 문제이던 거의 모든 문제를 그 유명한 수학 참고서에 나오는 문제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가 있었다. 그 책 한 권을 수도 없이 많이 풀어봤기 때문에 문제를 거의 외우는 수준이 됐었다. 문제를 보면 그 문제가 책의 왼편에 있는지 오른편에 있는지, 위쪽인지 아래쪽인지, 예제인지 유제인지 연습문제인지를 구별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책과 동고동락했기에 그것으로 인해 수학을 전공했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이 책을 교재로 많은 고교생에게 수학을 가르쳐 가계를 책임졌다. 후에 수학 교수가 되는 데에도 이 책은 적잖은 도움을 줬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학 참고서를 내 생애 책 한 권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내 생애 한 권의 책을 말하는 것이 나에겐 참 어렵다. 그런데 나의 삶에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친 이야기는 하나가 있다. 그 이야기는 오십의 중반을 넘어 육십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도 때때로 생각나고 나에겐 참 좋은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의 제목은 「썩은 사과 이야기」로 기억한다. 아마도 내가 열 살,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읽은 것 같다. 도덕책에 나왔던 여러 편의 이솝 이야기 중의 하나일 것이다.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교과서에 나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내 친구들 중에는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당시 부끄럽게도 우리 집에는 교과서 아닌 책은 삼국지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가 삼국지에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알다시피 「썩은 사과 이야기」는 사이좋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의 일상 중 어느 하루에 일어난 이야기이다. 어느 날 아침 아끼던 망아지 한 마리를 내다 팔러 읍내로 떠난 할아버지가 해가 저물 무렵에 돈 대신 썩은 사과 한 자루를 들고 돌아와서 그날에 일어났던 일을 할머니에게 들려준다.
  
장에 가던 초입에 송아지 팔러 가는 사람을 만나서 망아지를 송아지와 바꾸고, 그다음 양을 팔러온 사람을 만나 송아지를 양과 바꾸고, 양을 닭과, 닭을 썩은 사과와 바꿔서 이렇게 썩은 사과를 메고 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제대로 한 장사는 한 개도 없는데 할머니는 바꿀 때마다 할아버지를 칭찬한다. 할머니는 “망아지와 바꾼 송아지는 암소로 키워 우유를 짜고, 그것으로 버터를 만들 수 있어 좋겠다”, “송아지와 바꾼 양은 털을 깎아 양털로 옷을 만들면 따뜻하니 얼마나 좋은가?”, “닭으로 바꿨다 하니 이번엔 양계장 주인이 될 수 있어 좋겠다”, 썩은 사과로 바꾼 대목에 와서는 “아까 옆집에서 잼을 빌리러 왔었는데 이제 썩은 사과로 잼을 만들어 옆집에 줄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라면서 맞장구를 친다. 이야기를 읽던 유년 시절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다지 영리해 보이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초 긍정적인 할머니, 바보 같은 장사를 하고도 당당한 할아버지 모습이 멋있었다.
  
내가 여인이어서 그런지 「썩은 사과 이야기」의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순간순간 나의 삶에 작용을 한다. 감정적으로 여유를 갖게 한다. 내가 나에 대해 말하는 게 멋쩍지만 나는 꽤 긍정적이고 약간은 바보다. 주위 사람이 어떤 일을 해도 일단은 “잘했군, 잘했어!”라며 대개는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삶을 추진한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대책 없는 긍정은 아니다. 긍정의 에너지로 그들을 이끌고 응원한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을 못 다녔다. 나의 4학년은 새로 입학한 것보다 더욱 설렜던 학년이다. 그래서 4학년의 기억이 뚜렷하다. 부모님은 계셨지만 부모님 없이 살아야 했던 4학년, 5학년. 열 살, 열한 살. 사실은 엄청나게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학교가 있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국어책과 도덕책이 있었고, 그 속에 아름다운 이야기와 교훈들,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풀어 주신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방황하지 않고 그런대로 무난하게 자란 것 같다. 중ㆍ고교 시절도 크게 삶이 나아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깊은 고뇌(?)와 교과서의 가르침들이 내가 꿈꿨던 것보다 훨씬 과분한 삶으로 나를 인도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궁금하다. 「썩은 사과 이야기」, 그것이 교과서에 실렸었는지, 실렸다면 어떤 교훈을 주려고 했는지가. 글을 쓰다 보니 내 생애 한 권의 책은 초등학교 도덕책이고 한편의 이야기는 이솝이야기 중 썩은 사과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소금숙(수학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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