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가졌던 꿈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한림인은 얼마나 있을까? 요즘은 초등학생의 장래희망마저 대통령이나 과학자가 아니라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 어린 시절의 꿈을 위해 53세의 나이에 학문의 길을 선택한 이가 있다. 지난 6일, 한림학보는 시인이자 만학도인 박승일(국어국문ㆍ4년) 씨를 만나봤다.

 
박 씨는 학창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하는 것 보다는 교실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그는 “서정시를 쓰려면 여성스러운 감성이 필요하다”며 “어릴 때부터 문학 서적 중에서도 서정시집을 읽는 걸 특히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그는 시를 읽는 것은 물론 펜을 잡고 직접 써보기도 하면서 시인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취업을 해야 했다. 그는 결국 공직자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체국 공무원이 됐다. 이후 23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시인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는 “사실 시를 쓰려면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며 “돈에 대한 걱정 없이 꿈에 도전하고 싶어 직장을 다니면서 월급을 조금씩 모아왔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지난 2006년 한울문학에 등단하는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에는 강원도민일보에 ‘만추의 첫 눈’이라는 작품이 실리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강원 100인 선정 시화전’에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다. 그는 “강원도에 내 이름 석 자가 알려졌다는 사실이 감동이었다”며 “과거 공직생활에서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등단 후에는 포털사이트에 그의 팬 카페가 생기기도 했다. 그는 “이름 없는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며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더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팬 카페 인원은 450명이 훌쩍 넘어 정기적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모임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수백 명의 팬들 중에서도 특별히 그의 기억에 남는 팬도 있다. 그는 “시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사람이 내가 쓴 시에 감명을 받아 문학을 공부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내가 한 사람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는 게 정말 뿌듯했다”고 했다.
 
사실 박 씨가 직장을 떠나 시인이 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그는 “아버지가 사고로 제 눈앞에서 돌아가셨다”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시로 표현하면서 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엔 내 꿈을 위한 일이 가장의 역할을 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다”면서도 “가족이 내 꿈을 이해해주고 나 자신도 가장의 역할과 시인의 역할 중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첫 저서인 <그리움 머물 때>를 발간한 후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학문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시를 쓰는 데에도 국문학적인 지식과 시대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배우기 위해 집에서 가까우면서도 교육과정이 좋은 한림대학교를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자식뻘인 후배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문학인을 꿈꾸는 후배들을 별장에 초대해 함께 시를 쓰기도 했단다.
 
또 박 씨는 자신의 문학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어떤 시를 쓰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모든 독자들의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작품을 쓸 것”이라고 대답했다. 특히 “지금까지는 서정시를 위주로 아름다움을 노래해 왔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구조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서민들의 아픔을 대변할 수 있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후에는 시를 배우고자하는 사람들에게 강의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박 씨는 대학원에 입학해서는 지금보다 더 시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싶어했다. 또 “최종적인 꿈이라면 한국 문학 협회의 100대 시인에 포함되는 것”이라며 “시인으로써 내 족적을 남기고 싶은 것이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박 씨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줄 말이 없냐는 질문에 ‘하고 싶은 일’을 우선으로 꼽았다. 그는 인생의 목표는 ‘취업’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힘들어도 행복하고 ‘일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사회적인 추세나 남의 의견만을 따라 직업을 선택하지 말라”며 “대학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사회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별의 바다 (박승일)

파도소리
들리지 않는다고
바다를 잊은 것은 아니다

새소리 물소리 들린다고
또 하나의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다

오늘도
뜨거운 태양은
동해바다에서 일어나
설악의 대청봉으로 노을 진다

변화 없는 삶은 죽은 것이다

하지만,
삶이 변한다고
영혼마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바다는 온몸으로 말한다.

마음의 평화가 올 때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호수같이
견딜 수 없는 아픔에는
성난 파도 되어
미친 듯 포효한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듯

평화롭게
한 곳에 머물지 못함은
또 하나의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연어가
더 큰 포부를 안고
바다로 떠난 것과 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