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문 사립대가 내년부터 신입생을 대상으로 재수강 제도를 폐지하고, 재학생의 재수강 자격요건도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재수강 제도는 낮은 성적의 강의를 다시 수강해 성적을 올리는 제도로, '학점세탁' 혹은 ‘학점성형’의 수단이자 ‘학점 인플레’의 주된 원인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대학들의 해묵은 금기도 막상 깨려고 하니 여기저기서 저항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무엇보다 일부 대학교만 재수강 제도를 폐지할 경우 그 대학 졸업생들이 취업과 진학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사실 다른 이유야 있을 것도 없다. 당장이야 대학들이 서로 눈치들을 보고 있지만, 점차로 학점 인플레 해소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재수강을 제한하는 제도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마당에 총학생회가 대체재이수를 홍보하고 나선 것은 이해 못할 처사다. 현재 우리 대학은 재수강뿐만 아니라 대체재이수 제도까지 시행하고 있다. 대체재이수는 학생들에게 보다 더 많은 재량권이 부여된 재수강 제도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교양영역과 필수 여부 등에 따라 제한은 있지만, 특정 과목에서 낮은 학점을 받았을 경우 그 과목이 아니라 다른 과목으로 재수강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현실적인 불편함이나 정보 부족으로 인해 실제 대체재이수를 활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총학생회는 대체재이수라는 좋은 제도가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권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총학생회가 학사제도를 접근하는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총학생회는 작년 선거에서 학점포기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학점포기제란 낮은 성적을 받은 과목의 수강을 사후적으로 취소할 수 있는 제도다. 비유하자면, ‘세탁’이나 ‘성형’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호적을 파버리는 것이다. 총학생회는 그동안 자신들의 공약인 학점포기제의 시행을 본부에 요구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들에게 학점 인플레 해결을 위해 엄격한 학사관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수강 제도마저 폐지하겠다는 대학이 있는 마당에, 학점포기제는 황당하기까지 한 요구사항일 뿐이다. 작년 총학생회는 본부와의 협상에서 학점포기제는 포기하는 대신 대체재이수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총학생회는 대체재이수의 홍보도, 혹시나 학점포기제 공약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피하고자 부리는 꼼수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재수강 제도 논란에서 보듯이 학사관리는 공공의 이익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설령 재량권이 있다 하더라도 대학이 무작정 자기 의지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학생 개개인의 학점관리의 편의를 위해 총학생회가 나서 본부에 불공정한 제도를 제안한다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총학생회가 해야 할 일은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제도로 인해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겪고 있는 고충을 이해하고 그 시정을 본부에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몇몇 학생들의 몰상식에 영합하려는 학점포기제 공약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하며, 우리 대학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을 조롱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대체재이수 홍보도 중단해야 한다. 그런 허무맹랑하고 남부끄러운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총학생회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학 구성원들도 학점 인플레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남들 못지않은 높은 평점이 아니라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점은 실력의 지표일 뿐, 실력 자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