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 3학년 학생의 이야기다. 누구를 때려 본 적 없는 착한 성격이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공포, 분노, 복수심, 좌절감에 지속해서 시달린다. 의사로부터 ADHD 진단을 받고 안정제와 정신집중보완제 등을 복용하며 살아왔다. 원인이 뭐냐고 물었더니, 초등과 중등 시절 지속해서 왕따와 폭력에 시달리다가 성격마저 이렇게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때의 공포심이 지금도 그를 놓아주지 않으며, 심지어 귀신과 악령까지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왕따 당한 이유를 물었더니, 초등 1학년 때 한자능력시험 최우수 성적을 받은 후부터라고 한다. 아무 죄 없는 자기를 일방적으로 괴롭힌 그놈들에게 어떻게든 복수를 해야 마음에 위로가 된다. 그러나 어떻게 복수를 하는가?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이제는 무당을 찾아가거나 ‘전문’ 웹사이트에서 마술 거는 법을 배웠으며, 과거의 그 ‘나쁜 놈’들에게 악령을 보낸다고 한다.

인간 사회는 어디에나 양지가 있고 음지가 있다. 가능한 한 양지를 넓히고 음지는 줄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또 바라는 바다. 그러나 오늘날 아동과 청소년의 비정상적 패거리 문화, 폭력, 금품갈취, 노예서약, 성폭행 등 실태보고에 의하면, 교육 현장은 겉으로만 양지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고 파괴된 자아가 다시 정상으로 회복되려면 많은 시간과 전문적 치료가 필요하며, 철저히 파괴된 자아는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고 자살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양지로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할 학교가 거꾸로 ‘음지의 소굴’과 같은 모습으로 비치는 비극적 세태가 우리 마음을 어둡게 짓누른다.
  
부모들은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특히 자녀가 어릴 때엔 절대로 기죽이지 말라는 충고를 자주 듣는다. 그러나 강한 인격, 용감한 개성으로 성장하기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강하게 키우는 방법일까? 자기 위주로 행동하면서, 남들은 그것을 참고 받아들이기만을 요구하는 태도가 진정으로 강한 자아, 건강한 인격, 용감한 개성일까? 왕따 당한 학생은 약자고, 따돌린 동료 학우들은 강자이고 용감한 사내들일까?  
 
 도덕과 인륜의 첫걸음은 남의 입장을 배려하여 자신의 욕심과 욕구를 자제하는 마음이다. 약자를 보호하고, 여성과 어린이를 지켜주는 것이 젠틀맨십이며, 불공정한 핸디캡을 배제하는 것이 스포츠맨십의 기본이다. 반면에 학우를 상대로 패거리 행패를 부리는 청소년들, 여성을 협박하고 강간하거나, 심지어는 아무 저항도 할 수 없고, 할 줄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자신의 생리적 욕구 충족의 도구로 희생시키는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사실 분노를 참기 어려우며,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의 명분을 찾기 어렵다. 친구들과 편을 짜고 다수의 힘으로 한 명을 괴롭힌 학생들은 강자가 아니며 용감한 사내들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비겁하고 수치스러운 일에 함께 가담한 집단에 불과하다. 불명예스럽고 사내답지 못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명백한 범죄행위로 발전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핵심 과제는 다시 진정한 용기와 정의의 문제이며, 윤리적 행동의 기본 원칙의 문제이며, 인간다운 삶의 기본 조건의 문제다. 누가 이것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줄 것이며, 어떻게 이것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칠 것인가?

/ 김성진(철학과ㆍ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