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학도다. 동시에 나는 공학을 가르친다. 내가 1학년 신입생들을 가르치는 과목에서 가끔 묻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조금 엉뚱하지만 공학적이며 동시에 과학적인 질문인데, 바로 “빛의 속도를 측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매우 간단한 질문이다.
나만의 느낌일지는 몰라도 요즘 대학입시에 찌들어서 이제 막 대학에 진학한 신입생들은 처음엔 거의 반응이 없다. 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교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조금 기다렸다가 나는 다시 묻는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없는 자금을 지원할 테니”라고 말한다. 이건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고, 다시한번 묻는다. “나는 100억 원이란 돈을 줄테니”라고 ‘100억’ 부분을 엑센트를 주고 말을 한다. 이는 순전히 학생들의 관심을 끌자는 나의 속셈이다. 그리고는 “빛의 속도를 어떻게 정확하게 잴 수 있겠는가?”라고 이어간다.
그제서야 마지못해 몇몇 학생들이 시간을 두고 답을 한다. “먼 거리에서 빛을 쏴서 그 시간을 잽니다”, “정밀측정장치를 사서 잽니다” 등의 대답에 나는 빛이 얼마나 빠른지에 대해 설명한다. 알다시피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바퀴반이나 돈다. 서울서 춘천까지의 직선거리를 약 60킬로미터로 본다면 빛은 1/5000초, 즉 0.2밀리미터, 또는 200마이크로초만에 도착한다. 그렇게 빠른 빛의 속도를 재는 데는 얼마나 정밀한 측정장치와 기법이 필요할지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다. 그리고 빛의 산란과 회절을 설명하면 학생들은 더욱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결국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쳐보고 “인터넷에 나오는 데요”라고 대답하면 나의 질문은 한 달간의 숙제가 된다. 그리고 상황종료다.
놀랍게도 처음으로 빛의 속도를 측정한 사건은 우리가 전기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보다 훨씬 앞선, 지금으로부터 무려 350여 년 전인 17세기 중반부터 뢰머, 피조, 푸코 등 많은 공학도들에 의해 시도됐고 더 놀랍게도 현대의 정밀측정장치에 의해 측정한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방법은 다 달랐지만 그 결과는 오직 빛의 속도라는 진리치에 점점 가까워졌다. 최근엔 마이크로오븐에 초코렛바를 넣어서 2분만에 빛의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도 소개됐다. 당연히 학생들은 이 방식을 제일 좋아했다.
그럼, 소위 현대전자산업시대를 사는 당신이라면, 빛의 속도를 어떻게 측정하겠는가?
현대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떤 이는 빛의 속도로 어떤 이는 빛보다 빠르게 변한다고 한다. 우리 대학도 외부적으로 또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에 처해있고 또 그에 적절하게 대응하고자 교직원과 학생들 그리고 동문들이 모두 빠르게 노력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 변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350여 년 전 공학도들이 고민했던 정도의 고민을 요즘의 우리는 하고 있는가? 그들이 겪었을 사고의 훈련과정과 숙고 그리고 과학적 통찰력과 검증 없이 우리는 단지 빛의 속도로 변하기만 하면 되는가?
가을빛이 좋은 봉의산자락에서 나는 나태해진 마음을 깨우고 오래전 빛의 속도를 측정하고자 했던 공학도들의 도전적이고 풍요로운 사고만큼 아니 그보다 더 풍요로울 ‘한림’의 미래를 꿈꾼다.
/ 문규(전자공학ㆍ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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