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는 당시의 중산층과 서민이 반반 정도로 섞여 살았다고 회상된다. 우리 바로 옆집은 외제차가 있어 온 동네에서 유명했다. 한국의 기술, 경제 수준이라는 것이 매우 낮았기에 국산 완성차라는 것이 없던 시절, 그 집 아저씨가 차에 시동을 걸기라도 하는 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달려나와 한참을 구경하곤 했다. 때마다 나는 ‘내가 커서 만약, 만약 엄청난 부자가 된다면 차를 한 대 사서 몰 수 있을까?’라는 부담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상상에 잠겼다. 스마트폰이 요즘처럼 보편화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1980년대. 강남 붐과 함께 아파트촌에서 보내게 된 청소년 시절에는 팝송을 듣는 것이 또래 집단에서 대유행이었다. 뜻도 잘 모르면서 좋은 오디오가 있는 집의 친구가 LP로부터 복사해 준 최신 팝송을 카세트 테이프로 들으며 흥얼거리는 것이 청소년들의 고상한 낙이었다. 뮤비는 온통 외국 것이었고 K-POP이란 말은 있지도 않았던 때, 가요를 듣는다는 것은 뭔가 촌스럽고 뒤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욘사마 전의 진정한 한류 1세대라고도 할 수 있는 조용필의 노래가 일본에서 인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친구들끼리 모여 의아해했다. 한민족은 단군의 자손이며 식민지와 전쟁을 극복한 우수한 핏줄이라는 민족주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지만, 실은 우리의 것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부족했었나 보다.
21세기 하고도 10년이 넘은 지금. 작년 통계를 찾아보니, 한국은 자동차를 약 470만 대 생산함으로써 양적으로 세계 5위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단다. 비교적 짧은 역사에 비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양적으로 급성장했으며, 품질이나 소비자 만족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된다. 요즘 기름 값이 비싸다지만 자가용이 있다고 부자라 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환경운동가들은 대중교통이 발달한 지역의 주민들이 자가용 타기를 즐기는 풍토를 극렬히 비판하기도 한다.
한국의 대중문화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최근 뜬 ‘강남 스타일’은 주인공 싸이 자신의 평가에 의해서도 가장 세련된 K-POP에 들지 않는다. 안무가 단순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심지어 뮤비의 배경은 강남이 아니라고 알려졌다. 강남 스타일과 무관한 주인공이 자신은 계속 강남 스타일이라고 우기는 것이 감상 포인트란다. 더욱 재밌는 것은 강남이 뭔지 모르는 외국인들도 그것을 많이 보기에 그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가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희한하다.
이런 얘기들은 지난 수십 년간의 변화 중 일부에 불과하다. 연평균 10%의 성장을 이루던 나라 경제는 1990년대 말 이른바 IMF 위기를 겪으며 저성장모드로 돌입한 지 오래다. 대학만 졸업하면 대충 원하는 직장에 입사할 수 있는 시절도 지나갔다.
공부하랴, 운동하랴, 봉사하랴, 취업 스펙 쌓으랴 그리고 여가를 즐기느라 바쁜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은 한국 것이 세계 최고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 20대인 당신들이 참 부럽다.” 당장의 현실이 혹 짜증나더라도 이 점은 꼭 기억하기 바란다.
/ 이기홍(사회ㆍ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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