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과 인연을 맺은지 이십년이 되어간다. 1981년 겨울이 내밀고 춘천에 새로 대학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지금의 구관건물만 있었던 봉의산 자락을 찾아왔었다. 깨끗한 주변 경치가 마음에 들었고 특히 설립자의 교육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신념에 끌려 다른 대학에서 오라는 것을 마다하고 인생수업과 학문연마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초창기 열 명 정도의 교수들이 설립자와 원로교수들의 성원과 격려 속에서 성의를 다해 일했고 전국에서 최고 수준의 보수를 받았다. 설립자는 남다른 수완으로 병원경영을 잘 해 거기에서 얻은 수익을 대학에 아낌없이 투자하여 보통대학과는 다른 특성 있는 대학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심초사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초창기와는 사정이 달라져 재단의 투자 의욕이 상실된 게 사실인데 그 이유는 과격한 학생들의 폭력적 시위라는 말이 있다. 교수들의 봉급 수준도 계속 떨어져 전국 평균 이하에서 맴돌아 교수들의 불평이 늘어났고 차츰 몇 년 근무하다가 다른 대학으로 옮겨가는 사람이 생겨났다.

  최근에는 나의 동료 교수도 보수가 훨씬 낫다는 서울의 어느 대학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학생들은 또 복지시설이 형편없다고 불만이 많다. 어느 정도 근거 있는 불평, 불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동안 병원 경영 사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너무 성급하게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재단에서도 돈을 숨겨 놓고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니, 교수, 학생, 재단, 행정 모두가 서로 신뢰하면서 갈라져 있는 의견과 주장들을 집약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월 적립금도 계속 쌓아 둘 게 아니라 학교 앞 부지를 하루 빨리 사들여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도서관도 짓고 제법 반듯한 캠퍼스가 갖추어지도록 한다면 학교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학생 유치에도 상당한 홍보적 효과를 거둘 것이다. 내년도에 기숙사가 완공되어 원하는 학생들을 전부 수용하고, 이사장이 약속한대로 계속 교직원들의 봉급이 인상되고, 학생 복지시설도 눈에 띄게 개선된다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산천경개가 어느 곳보다도 훌륭한 이곳, 춘천의 우리대학으로 몰려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교수들의 사기를 저해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사이비 개혁에 학교 행정이 휘말려 교육부에서 하라는 대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 요즈음에는 교수평가라는 미명하에 교수들을 무슨 유치원생들처럼 계량적 수리적 일변도의 평가를 하고 있는데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수들의 창의력, 자율성, 열정적 노력을 그렇게 단순하게 저울질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학생들의 강의 평가도 각 교수가 알아서 하고 수업개선에 참고하도록 해야지 이상하게 항목화 해서 컴퓨터로 통계처리 점수화한다는 것도 문제고, 수준이나 경험이 부족한 교수가 여러 가지로 선배되는 교수들을 평가, 심사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교수 자질이 의심스러운 몇 사람을 추려내어 도태시키겠다는 이유로 사명감과 천직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선의의 대다수 교수들을 유치원생 다루듯이 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이다. 가급적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면서 반성하고 개선하게 함으로써 전체적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특히 인문대 교수들의 근거 있는 주장과 의견이 학교 행정에 많이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모두가 아집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전통과 진보의 양면적 세계관이 중용의 덕으로 절충, 화해, 융합된다면 우리 대학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

  올해의 총학생회 간부들은 예년보다 덜 과격하고 더 합리적인 인상을 주고 있는데 모든 구성원들이 솔직하게 서로의 다양한 관점을 대학인답게 신사적으로 표현해서 학교 정책에 반영되도록 해야한다. 올바른 인생수업은 끊임없는 대화와 자기변혁을 통해 이루어진다. 나는 춘천에서의 시대를 마감하기 전에 양구를 통해 나 있다는 최단거리로 금강산도 가보고 싶고, 주변의 자연과 역사 속에 뿌리 깊이 스며 있는 천혜의 정기를 받아 영육간의 활기로 키우고, 그 기운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담담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부끄럼 없는 삶을 엮어가고 싶다.

/ 김효원(어문·영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