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된 영화 ‘설국열차’는 질서와 균형이 권력을 가진 세력의 주된 관심사임을 인상 깊게 보여줬다. 또한, 폭력과 저항운동이 기존 질서와 맺는 은밀한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영화의 내용과 꼭 일치하지는 않지만 많은 역사적 사례가 질서와 폭력의 상호의존적인 측면을 입증해준 바 있다. 프랑스혁명은 혁명으로 인해 허물어진 질서를 회복하려는 반작용을 낳았고 꼭 혁명 때문만은 아니지만, 유럽은 이후 ‘100년간의 평화’를 구가했다. 최근 아랍 저항세력의 테러리즘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공고히 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소수민족, 다양한 소수자,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박해는 사회의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주된 수단이었다. 동성애자는 ‘정상적인’ 성의 질서를, 유대인들은 순수한 독일을, 2011년 노르웨이에서 극우주의자 브레이비크가 자행한 살상은 백인만의 노르웨이를, 매카시즘의 광풍은 ‘붉은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미국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행해졌다. 국제적인 행사만 있으면 요란을 떠는 노점상 단속의 명분 역시 거리질서를 지킨다는 것이었다. 또한, 새로운 질서는 대개 폭력을 통해 등장했다. 예를 들어 현재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정복, 내전, 혁명, 독립운동을 통해서 탄생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는 폭력이 질서를 낳고 질서를 위해 폭력이 사용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폭력과 질서에 관한 독일 사회학자 소프스키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는 인간들이 모여서 사회를 만들게 된 것이 노동에서의 협동의 필요성이나 본성에 내재한 사회성 등에서 기인하기보다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인식에서 소프스키는 폭력과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가 맺는 역설적인 관계를 조명한다.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웠던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타자를 위해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힘이 약한 사람도 간계를 쓰거나 제3자와 협력해 자기보다 힘이 센 자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폭력을 제어할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위협감은 매우 컸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서로 협력해 집단적인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 계약을 통해 집단의 성원이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계약을 누구나 흔쾌히 수용한 것은 아니었고 규칙이 반드시 지켜지는 것도 아니었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생겨났고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것은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의 수단을 독점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폭력 문제의 해결 과정은 사회통제가 심화되는 과정이었다. 폭력예방의 임무를 맡은 집단의 수와 권한이 늘어갔다. 이들을 위한 건물이 세워지고 법을 위반하는 자들을 감금하는 공간이 세워진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수시로 공동체의 가치와 질서를 주민들에게 일깨웠다. 폭력을 예방하고 처벌하기 위한 법 역시 지속해서 늘어갔다. 왜냐하면 새로운 법이나 규정의 도입은 이 규칙에 대한 위반의 생성을 의미했고 또한 필연적으로 어떠한 규정도 그것이 적용될 수 없는 예외가 있어서 이 예외적인 경우에 관한 또 다른 규정이 도입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집단 구성원의 일상은 점점 더 촘촘해지는 그물망 안에 갇히게 되었다.

  주민들은 점점 더 구속감을 느꼈고 소리 없는 분노가 늘어가게 된다. 비밀스러운 회합이 만들어지고 유언비어가 유포된다. 기회가 주어질 때 사람들은 경찰서 등 법과 질서를 대변하는 건물을 습격하고 무기고에서 소수에게 위임되었던 무력의 수단을 탈취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폭력에 관한 사회의 계약은 파기된다. 통제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다시 찾은 폭력을 만끽하게 된다. 가게를 습격하고 권력을 상징하는 건물과 도상을 부수고 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을 학살한다.

  질서는 다시 반란을 초래하고 대중의 광기로 이어진다. 폭력이 무질서를 낳는다면 질서는 폭력을 만든다. 적어도 현재까지 이 딜레마는 해결되지 않았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에서부터 탄생한 질서는 다시 두려움과 폭력을 낳았던 것이다. 인간은 평화와 질서를 추구하는 유전자와 함께 자신에게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질서와 규율에 저항하는 유전자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엄한진(사회ㆍ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