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지금부터 한 10년 전의 일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선생노릇을 하면서 유학갈 준비를 할 때였다. 그때 나도 토플 때문에 꽤 속을 썩었다. 속 썩는다는 것은 점잖은 표현이고, 아마 끙끙댔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크게 바쁜 일이 없었고 그냥 이것   저것 속절없이 지낸 시절이었다. 게다가 명색이 영어선생인데 토플 따위에 손대기가 넘사스럽다는 자격지심이 적잖이 깔려있었다. 그러니 결과는 신통찮을 수밖에!

  몇 번 쳐서 겨우 넘기긴 넘겼다. 생각하면 당시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었다. 나를 가르친 선생님들은 글은 참 잘 읽었는데, 말은 썩 잘하지 못한 것 같다. 이게 일본 식민지 시대에 영문학을 훈련받은 탓이라고 말하는데……. 그러나 이미 해방된 지 30년이 지난 시절이었고 더구나 중간에 6·25를 계기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절대적이 됐으므로 너그럽게 봐줘야할 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하여간,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양지차다. 내 영어 발음은 지금도 내동기와 선후배 사이에 회자될 정도로 ‘독창적’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내나름의 고집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R’자에 혀를 안으로 구부리는 것에 흡사 다가오는 제국주의에 백기를 들고 투항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영문학을 공부하러 왔지 서양 원숭이 흉내 내러 왔는 줄 아느냐고 어리석은 오기도 부렸다. 이런 저런 내경험 때문에, 두 나라의 말을 제대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언어학자의 말을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담배가게에 가서 담배를 사고, 식당에 가서 설렁탕을 먹고 나서 이쑤시게 부탁하고, 좀 더 차원을 높인다면 신문기사를 읽고……. 아마 이런 차원에서 두 나라 말을 한다는게 제대로 하는 거라면, 아마 나 자신도 그런 부류에 속하리라.

  그러나 여기서 약간 더 수준을 올려, 신문 사설 혹은 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갈 수 있을까? 며칠 전 우연한 기회로 토익을 강의하게 됐다. 예습을 하면서 느낀 일인데, 토익의 특성을 규정하기가 어려웠다. 듣기 평가는 내가 원래 귀가 나쁜 사람이니 그렇다치고, 읽기 부분의 영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종잡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것은 그냥 정확한 문법적인 지식을 요구할 때도 있었고, 어려운 단어를 숙지하고 있는지를 요구할 때도 있었다. 이런 부분은 토익책을 열심히 보면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기본적인 문장이해 및 상식적 표현을 요구할 때도 있고, 하여간 정확하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꼬집어 말하기 어려웠다. 다만, 난해한 글이나 단어는 요구하지 않았으며 정확한 표현을 요구할 때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토익 고득점을 바라는 사람은 그냥 토익 공부만 해서는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 “이 책 한권이면 토익도 문제없다”는 식의 말에 현혹돼서는 안 될 것이고, “나는 외국영화를 통해 영어를 공부했다”는 식의 말에도 넘어가지 말자.

  내 생각에 토익이나 토플에서 고득점 받으려는 사람은 토익 강좌를 2개 정도 착실히 듣고, 나머지는 쉬운 영어 소설이나, 한국에서 발간되는 영문잡지를 읽는다든지, 혹은 시중에 나와 있는 독해책을 공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원서를 꼼꼼히 읽는 것은 그 중 가장 좋은 일임이 명백하다. 하긴 이런 말이 어느 정도 힘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용보다 디자인에 신경을 쓰는 시대이니까. 토플 세계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는 식의 광고가 여전히 신문지상을 채우는 것을 보면.

/ 송승철(영어영문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