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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미술의 보고, 돈황」“실크로드를 따라 화려하게 꽃피운 불교미술의 보물창고, 돈황 막고굴”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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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27  20: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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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을 출발한지 14일 만에 드디어 돈황(둔황)에 도착했다. 필자가 돈황에 온 이유는 막고굴 때문이다. 막고굴이 중요한 이유는 불교의 석굴 전래 경로 중에서 그 중간에 해당하고 전체 석굴 중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경주의 석굴암은 인도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석굴(탈레반에 의해 파괴됨), 중국 쿠처의 키질 석굴, 투르판의 베제리크 석굴, 둔황의 막고굴, 장예의 마티스 석굴, 란주의 병령사 석굴, 천수의 맥적산 석굴, 뤄양(낙양)의 용문 석굴을 거쳐 간 불교의 석굴 문화가 동쪽 끝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필자는 지금 불교문화의 정수인 대표적 불교 석굴을 실크로드를 따라 경주부터 거꾸로 추적해가고 있는 것이다.

  돈황은 타클라마칸사막 주변 도시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도시로 이 사막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사막 서쪽 끝에 자리 잡은 카슈가르(카스)와 장안(시안)의 중간쯤이다. 장안을 출발해 서쪽 실크로드로 깊숙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반대로 먼 서역 땅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험난한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고 장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쉬면서 숨을 고르는 곳이다. 사람들은 거기서 여행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장사가 잘 되도록 부처님께 기원했던 곳이다.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갔던 법현(337-422)과 인도에서 불경을 구해 돌아오던 현장(602-664)과 혜초(704?- 780)도 돈황에 들렀다. 돈황은 그만큼 실크로드 문화와 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위진남북조시대부터 원나라에 이르는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렇게 많은 석굴과 불상과 불교 벽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 불사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스폰서(기부자)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황량하고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에 그렇게 장엄한 종교적 건축과 예술 작업이 이루어진 것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다. 지고지순한 신앙의 힘이 아니고서는 저렇게 찬란하고 경이로운 예술 작품이 탄생할 수가 없다.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린 미켈란젤로나 저기에 비견할 수 있을까? 이름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예술가들의 저 깊은 신앙심은 어디서 나왔을까? 저 캄캄한 석굴 안에서 어떻게 저렇게 선명한 색깔과 정교한 조각을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 마티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저 불화들의 사연은 무었을 뜻하는 것일까?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 올라갈 것 같은 저 비천상들의 유연함과 하늘거리는 몸짓은 어떻게 그렸을까? 한 번에 열대여섯 개의 석굴 밖에 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돈황에 있는 막고굴을 세계 제1의 노천박물관이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그 경이로운 불교미술 때문이다. 로마 바티칸박물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런던 내셔널갤러리,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등에 소장된 엄청난 기독교 성화를 능가하는 불교 성화들이 자연 상태의 석굴 속에 1천년이 넘게 보관돼 온 것이다. 정말 국적을 떠나서 인류문화의 위대한 유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과 한국, 일본의 불교도 모두 이곳을 경유해서 들어온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불교에 그만큼 큰 영향을 미친 곳이다. 필자가 이번에 직접 확인한 바에 의하면, 돈황의 불화나 불상들은 맥적산 석굴, 마티스 석굴, 병령사 석굴, 베제클릭 석굴, 키질 석굴보다 보존 상태가 훨씬 양호해서 색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고, 불상도 온전한 것들이 많았다. 

  돈황은 장경동에서 발견된 수많은 경전과 고문서들로도 유명하다. 1900년 6월 22일에 막고굴을 관리하던 왕원록(1849-1931)이라는 도사가 우연히 제16호 석굴 안에 밀폐돼 있었던 제17호 석굴에서 엄청난 양(약 5만권으로 추정)의 고문서를 발견하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여기서 발견된 문서는 불교 경전은 물론 중국 황제의 칙령, 이단으로 몰려 동쪽으로 쫓겨난 기독교 일파인 네스토리우스파 경전, 마니교의 경전, 티베트 전통의학 처방전, 위구르인들의 토지매매 계약서, 인신매매 계약서, 당나귀를 빌려가고 돌려주지 않는다는 소송 문서, 변방에 근무하는 병사가 고향의 가족을 그리워하는 편지, 고향의 아내가 최전방 전선에 근무하는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등 온갖 문서들이 다 나왔다.

  그런데 필자가 놀란 것은 제17호 석굴의 크기가 예상보다 훨씬 작았다는 점이다. 이 석굴은 16호 석굴을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는 방이다. 16호 석굴은 엄청나게 넓은 굴을 파고 거기에 법당을 들였다. 공간이 석굴암의 4배는 된다고 보면 된다. 16호-17호 석굴의 사진에서 정문 오른쪽에 창문이 보이는 방이 17호 석굴이다. 석굴이라고 할 것도 없이 작은 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막고굴을 처음 만들었다는 낙준 스님의 조각상이 앉아 있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3미터쯤 되는 작은 공간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경전과 고문서들이 쌓여 있었는지 의문이다.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펠리오가 그 방에 쪼그리고 앉아서 산처럼 쌓여있는 문서를 분류하는 전설적인 사진이 그런 착각을 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문서들을 청나라 말기의 혼란을 틈타 서양의 악마들(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이 약탈해갔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영국(헝가리 태생)의 오렐 스타인(1862-1943), 프랑스의 폴 펠리오, 그리고 일본의 오타니(1876- 1948)가 바로 악마들이라고 욕을 먹는 사람들이다. 왕도사를 몇 푼의 돈으로 유혹하거나 협박해 고문서들을 자기 나라로 실어 날랐다. (오타니 덕분에 본의 아니게 우리나라도 실크로드 불교 유물 3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폴 펠리오는 우리와는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이다.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언어 천재인 이 동양학자가 바로 돈황 막고굴 장경동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고 파리(파리국립도서관 소장)로 가져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자를 모르는 스타인(그는 중국인 조수를 데리고 다녔다)과는 달리 한자 판독이 가능했기 때문에 귀중한 문서만 가져갔다.

  문제는 서구 열강이 약탈해간 이런 실크로드의 유산을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스타인이 가져간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대영박물관 어디에서도 이런 보물을 전시하고 있지 않았다. 루브르박물관도 마찬가지다. 펠리오가 가져간 보물을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었다. 당사국들은 그런 유물을 반환하지 않으려면 일반인에게 공개하여 마음대로라도 볼 수 있게 하는 성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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