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중독된 사랑’이란 외국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다. 아주 예쁘게 생긴 프랑스 여배우가 주인공이었는데, 한 톱모델의 광기어린 집착적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이 대체 사랑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했던 영화라고 기억된다. 그래서 제목이 ‘중독된 사랑 (addicted love)' 이었던 것 같다. 

최근 ‘중독’이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알코올중독’, ‘약물중독’과 ‘도박중독’, ‘게임중독’, ‘사이버중독’ 등. 심지어는 ‘일중독’이란 말까지. 그래서 흔히들 ‘난 이것에 중독된 것 같아’라고 하거나 ‘넌 그것에 중독됐어’라고 표현한다. 보통 한 가지 무엇인가에 몰두하거나 ‘마니아’거나, 아니면 반복적으로 그 무엇인가를 찾고 행동할 때 사용하곤 한다. 

넓은 의미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정신의학적으로 ‘중독’이란 말에는 ‘통제 불능’이란 의미가 내재돼 있다. 스스로 제어하고자 해도 조절이 안 돼 그 정도가 지나칠 수밖에 없는 경우를 일컫는다. 그래서 단순한 기호나 반복적, 강박적 행동, 또는 집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의학적으로 중독에는 또한 내성(tolerance)이라는 ‘반복 사용했을 때 효과가 점차 감소하거나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점차 용량을 증가시켜야 하는 상태’와 금단 증상 (abstinence or withdrawal symptom)이라는 ‘물질의 사용을 중단하거나 사용량을 줄였을 때 나타나는 불편한 증상’의 문제가 포함돼 있다. 그래서 중독은 처음에는 즐겁고 신나지만 중독이 된 후에는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편하지 않고, 심지어는 불편하고, 괴로운 상태가 돼 이러한 불편을 줄이고자 중독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중독 질환은 다시 물질 중독(substance addiction)과 행위 중독(behavioral addiction)으로 나눈다. 알코올, 담배, 약물 등 존재하는 물질에 의한 중독 즉 물질 중독과 특정 행위와 그에 따른 쾌감이 중독 행동으로 이어지는 행위 중독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물질 중독만을 중독 장애라고 지칭했고, 행위 중독에 대해서는 중독 시키는 분명한 물질이 없는 것이라서 중독 장애로 여기지 않았으나, 최근의 많은 뇌영상 연구와 생물학적 연구를 통해서 무엇을 복용하거나 주입하는 물질 중독과 유사하게 행위 중독 역시 같은 기전을 통해서 중독이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최근 이러한 물질, 행위를 모두 중독 질환의 범주에 포함하게 됐다. 이러한 중독 질환에 대한 개념의 변화에는 많은 연구의 결과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 정신과 진료 실제에서 ‘중독성질환‘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그 이유가 있다. 통계적으로 마약, 알코올 등의 약물남용자의 숫자나 도박중독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 인터넷의 급속한 성장에 뒤따라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일반성인에서도 사이버중독이란 새로운 사회적 병폐가 또 한 가지의 중독으로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이들에게서 컴퓨터는 알코올중독자의 술처럼 작용한다. 자신의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작동이 안 되면 불안해하고, 지금 무얼 해야 할지 모르고,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 그래서 당장 피시방을 찾게 되고 그러면 불안이 줄어든다. 

이러한 중독은 자신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가정,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를 유발하며 그래서 이들 중독의 치료는 ‘자신 스스로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중독자들은 매번 ‘오늘까지만 하고 내일 부터는 끊는다’고 말하는데, 내일이 오면 다시 ‘오늘까지만’이 되풀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또한 ‘오늘만 하지 않는다. 꼭 하고 싶으면 내일한다’는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중독된 삶을 반복하느냐 맑고 온전하게 건강하게 사느냐의 선택은 내 안에 있다. 다만 나의 지금 행동이 중독된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 성찰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 선택의 기회도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