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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교양학부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교수는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바보가 된’ 도쿄대생을 경계하며 교양을 강조하고 있다. 제목만 보고 도쿄대생과 자신을 비교하며 만족스러워 하는 ‘바보’는 없기를 바란다. 다치바나 교수가 도쿄대생을 실제로 바보라고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대학이 교양 있는 지성인을 길러내지 못하고 전문 기능인을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과 이 시스템에 매몰되어 가는 우리들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성은 우리의 과제로 넘기고 여기에서는 ‘교양 없는 사람’을 ‘바보’로 간주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나는 바보인가? 나는 교양이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양’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양’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많은 책에서 여러 학자들의 교양에 대한 담론을 만나 볼 수 있지만 한 가지로 수렴해 간단하게 정의하기는 역시 무리다.
그렇지만 감히 ‘교양’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면 ‘보편적인 지식+배려+소통능력’이 곧 교양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정의는 ‘교양’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맘을 상하게 하지 않고 스스로도 맘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어휘의 정확한 의미, 기본적인 한자, 계산 방법, 중요한 역사적 사실, 일상적인 과학 원리 등을 보편적인 지식의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모르면 실소(失笑)를 자아내는 지식뿐만 아니라 몰랐을 때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의 맘을 상하게 하는 문화 규범이나 예절 등도 보편적인 지식에 포함될 것이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사람이 한쪽에 비켜 서 있지 않고 문 앞에 서 있거나 내리기 전에 먼저 타려고 하면 내리는 사람은 맘이 상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알고도 그렇게 한다면 교양이 없다기보다는 못된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을 테고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한다면 교양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보편적 지식의 부족으로 다른 사람에게 교양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어 예절과 관련해서만 얘기해 보자면, ‘커피 나오셨습니다’ 같은 실소를 자아내는 말은 차치(且置)하고, 학생이 교수에게 이야기하면서 학생의 선배를 주어로 ‘아까 선배가 다녀가셨습니다’와 같이 말하는 것도 교양 없는 말에 속한다. 듣는 교수가 학생인 ‘선배’를 말하는 후배의 입장에서와 같이 높이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실례가 된다.
다른 문화권에 가면 그 문화를 몰라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맘 상하게 하고 교양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교양 없는 사람이 안 되기 위해 우리는 독서와 다양한 체험을 통해 많이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박식하고 경험이 풍부한 학자라 할지라도 경험하지 않은 낯선 환경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극복해줄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다. 기본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를 갖고 있으면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타인을 맘 상하게 하는 일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배려’하는 마음은 거꾸로 타인의 교양 없는 행위에 대해 이해하고 스스로 맘 상하지 않게 해 줄 것이다.
배려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정말 의외의 문화적(세대, 지역 포함) 차이로 타인을 맘 상하게 할 수 있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소통 능력이다. 어떻게 처신할지 모를 때 물어볼 수 있는 능력, 처신을 잘못했을 때 이해를 구하는 능력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맘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표준어 규정 총칙에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명시한 것도 교양과 소통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 능력은 다시 보편적인 지식과 배려하는 자세가 있을 때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교양을 구성하는 이들 세 요소는 서로 맞물려 있다. 하지만 소통의 기본은 삼가 말하고 새겨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혹(不惑)의 나이 이순(耳順)의 나이를 넘겨서도 새겨듣지 못하고 함부로 말해 교양 없는 사람이 되기 쉬우므로 어찌보면 교양의 제일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 보편적인 지식, 배려, 소통 능력을 겸비한 교양 있는 사람이 돼 타인을 맘 상하게 하지 않고 스스로도 맘 상하지 않기를 되뇌어 본다.
/이병기(국어국문ㆍ부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