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기간에 우연히 신문을 읽다가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장 폴 사르트르가 하루 6시간씩 글쓰기를 하는 습관을 유지하며 살았다는 기사 내용을 발견하고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로서 교육과 연구, 사회활동 등을 하고 살지만 결국 내가 하는 일은 어떤 형태가 됐든 글쓰기가 아닌가라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바빴고, 지금도 바쁘다. ‘게으름은 죄악’이라는 경구를 가슴 깊이 되새기며 나름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산 것이고, 무엇 때문에 그리 바쁜 것인가. 고매한 철학적 질문까지 가지 않더라도 나의 일상의 구체적 삶의 방식을 반성해 본다.

나는 하루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하고 있느냐고 자문해 봤다. 우선 들쭉날쭉하다. 논문도 쓰고 교과서 개정판 작업도 하고 종종 신문 칼럼들을 쓰고 있지만 하루 몇 시간이나 글쓰기 일을 하고 있는지 대중을 잡을 수 없다. 더욱 심각한 발견은 나의 글쓰기의 대부분이 외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고 마감시간에 쫓겨서 수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나의 글쓰기 인생은 내가 아닌, 남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요즘 대학, 대학교수, 대학생 모두 그 어느 때 보다 바쁘다. 대학은 당장 올해부터 정원감축 등 구조개혁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들어가느라 바쁘다. 앞으로 더욱 바쁠 것이다. 현재 대학정원 56만 명에 비해 2023년 대학입시 학령인구가 40만 명으로 줄어 16만 명의 격차 발생 때문이다. 우리 한림대도 정원감축 등 대학구조개혁과 연계한 교육부의 지원사업인 LINC(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와 ck-1(지방대학 특성화 사업)를 신청하기 위해 방학 중인데도 상당수의 교수와 교직원이 때로는 밤을 새우며 바쁘게 일했다. 일의 핵심은 어떻게든 교육부 지원사업을 가능한 많이 따와 대학발전과 학생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주면서 동시에 한림대가 명문 사립대로서 내로라하는 특성화 역량을 주도적으로 창출해 내는데 있다. 우리 대학의 장기적 비전과 가치를 외부사업 수주에 희생시키지 않도록 항상 경계할 일이다. 우리 대학이 언제나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 대학의 가치를 위하여 바쁘게 일하는 대학이 됐으면 한다. 대학 교수들은 요즘 어느 때보다 바빠졌다. 언론정보학부장을 맡고 있는 나의 경우, 학교 행정일과 교육부 사업 신청에 대부분의 동계방학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많은 교수들이 이전보다 논문도 더 많이 써야 하고, 강의도 훨씬 더 성실하게 해야 하고, 학생들도 더 자주 만나고 이제 인턴과 취업 알선도 상시적으로 해야 하는 등 너무 바빠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만큼 대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급증하고 대학의 환경이 급속하게 경쟁적 구도로 변화하고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바쁜 와중에 우리가 이렇게 바빠야 하는 이유를 상실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수들의 논문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대학 안에서 교수들 간의 학술적인 대화나 연구 분위기는 현저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교수들이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기능적인 부분을 더 가르쳐야 하는 현실에서 이제 학생들의 지성과 교양, 인격에 관한 교육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학생들을 더 자주 만나고 있지만 제자로서 사랑과 감동은 줄어들고 있다. 일하는 사람들은 바빠지면 재미있는 법이지만 요즘 교수들은 바빠지기만 했지 별로 재미가 없다. 학생들은 나름 더 바쁘다. 50%대로 떨어진 대졸자 취업률 앞에서 저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해, 어학성적과 인턴, 봉사활동 등 스펙 쌓기에 바쁘다. 학기 초 강의신청을 위해 분초를 다투는 클릭 전쟁을 벌여야 하고 상대평가 등 빡빡해진 강의에서 일정 수준의 학점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요즘 대학생들을 정말 바쁘게 만드는 것은 소셜 미디어이다. 한 조사에서는 대학생들이 평균 소셜 미디어를 하루 3시간 이상을 하고 있고, 12시간 이상을 페이스북에 매달리는 중독현상도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소셜 미디어에 매달려 몇 시간 동안 메시지 수다를 떨다 보면 자신이 왜 바쁜지 자각하지도 못한다. 이런 학생들은 강의시간에도 스마트폰을 쥐고 강의를 듣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소중한 시간에 대학, 교수, 학생이 진정 바빠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바빠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시급하고 바쁜 일인 것 같다. 달리는 방향을 알고 자각할 때만 우리의 바쁜 일상은 행복해질 것이다. 나는 이제 사르트르와 경쟁하며 하루 6시간 글쓰기로 바빠지련다.

/최영재(언론정보ㆍ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