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에서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과목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지난해 대학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를 제외한 제2외국어 폐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번 학기부터 우리 대학 학생들은 스페인어, 독어, 불어, 현대몽골어를 수강하지 못하게 됐다. 사라진 제2외국어의 자리는 늘어난 영어 강의로 메워졌다.

폐강된 스페인어, 독어, 불어, 현대몽골어는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난 인기 강좌였다. 폐강 당시 해당 과목을 가르치던 강사들도 ‘왜 인기 강좌를 폐강하려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대학 측은 나중에서야 ‘한 가지 언어를 심도 있게 배우고, 공인 영어 성적을 대학에서 올릴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물론 수업만으로도 토익 점수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영어를 강조하는 대학 분위기가 도를 넘어섰다. “취업을 하려면 영어 성적이 최우선이다”라고 강조하며 방학 중 기숙형 몰입 토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토익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영어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공을 원어로 들어야 하는 수업도 늘었다. 또 13학번부터는 학과를 불문하고 영어 졸업인증제를 만들어 일정 토익성적에 만족하지 못하면 학사모를 쓸 수도 없다.

글로벌시대에서 영어가 필수인 것을 보면 대학의 행보가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영어에 능통한 학생들도 많아지고, 전공 수업도 원어로 진행하는 등 영어강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작정 영어강의 수만 늘리고 볼 일은 아니다. 강의 수가 교육의 질을 보장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또 취업을 위해서 꼭 영어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최근 일부 대기업에서는 ‘영어만으로는 2%가 부족하다’며 제2외국어 능통자 우대 채용을 확대하기도 했다. 이에 취업준비생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펙을 쌓기 위해 제2외국어 능력 제고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수 대학에서는 영어뿐만이 아니라 불어, 독어 등 영어권을 제외한 언어를 습득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제2외국어를 취업 스펙으로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대학의 상황은 다르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이해한다. 우리 대학 학생들의 평균 영어 성적이 좋은 기업에 취직하기에는 부족해 제2외국어를 배울 시간에 영어 성적을 올리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본인이 듣고 싶은 수업을 자율적으로 고르고 배울 권리가 있다. 또 현재 개설돼 있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들은 굳이 대학이 아니더라도 쉽게 배울 수 있는 과목들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스페인어나 불어 같은 제3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교양 쌓기’다. 하지만 대학은 교양외국어를 교양 쌓기가 아니라 ‘스펙 쌓기’로 보고 있어 문제다. 이젠 대학의 모든 외국어 과목이 영어로 바뀌는 게 아닌가 싶다.

독일어 중 ‘fach idiot’이라는 말이 있다. ‘전공 바보’라는 뜻으로, 한 가지 분야, 즉 전공 분야에는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는 바보 수준인 말을 이른다. 대학생이 자기 전공 분야만 알아서야 되겠는가. 

비단 전공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사회에서 아는 외국어가 영어밖에 없다는 것은 흠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영어 편식으로 좁은 시야와 제한적인 지식을 가지기보다, 넓은 시야와 다양한 지식을 함양해야 할 것이다. 영어만 잘 한다고 다 글로벌인 것은 아니다. 우리 대학에서 유학하는 비영어권 교환학생들과 그 나라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도 글로벌이다. 영어만 알고 다른 언어는 기본적인 인사말조차 가르치지 않는 것은 글로벌을 추구하는 대학이 나아갈 방향은 아니다. 영어 강의 숫자를 늘리는 게 곧 영어 성적 향상의 지름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