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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선(善)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등장심훈 교수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날 때’ ⑬ 헨델의‘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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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01  19: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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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날 때’ ⑬ 헨델의‘메시아’

헨델의 나이 56세에 완성된 ‘메시아’는 헨델 생애 최고의 대작이었다. 지금도 나이 50을 넘기면 예술가는 쉬이 창작열을 잃기 마련인데 하물며 모든 생활 환경이 척박하기만 했던 200여년 전은 지금보다 여러모로 작곡 활동에서 더욱 많은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서양의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들은 혹독한 작업 환경 속에 일찌감치 생을 마감하곤 했다. 31살에 요절한 슈베르트, 35살에 눈을 감은 모짜르트, 39살에 유명을 달리한 쇼팽이 그 안타까운 증인들이다. 그런 속에서 생의 후반부에 헨델이 세상에 내놓은 작품, ‘메시아’는 서양 클래식 음악사의 한 페이지에 그의 이름을 영원히 아로새긴다. ‘메시아’란 구세주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사실, 일찍부터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국제적인 시각에 눈을 뜬 헨델은 독일에 잠시 머물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자신의 기량을 전 유럽에 펼친 ‘코스모폴리탄’(세계인)이었다. 그런 헨델이었기에 사업적 수단도 남달라 당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크게 유행하던 오페라를 영국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자신이 직접 오페라단을 꾸려나가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오페라는 지금의 뮤지컬에 해당하는 것으로, 극작가와 작곡가, 연출가와 배우(가수) 등이 협업을 통해 완성해야 하는 종합 예술이다. 그렇기에 오페라의 첫 단계는 먼저, 사업주나 연출가가 극작가에게 대본 작성을 요구하고, 완성된 대본을 다시 음악가에게 보여주며 작곡을 부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로 일을 벌이는 작업은 끊임없는 문제를 그에게 안겨 주었다. 특히, 출연료를 놓고 가수들과 숱한 분쟁을 벌이는 가운데 그를 고꾸라뜨리려는 수많은 정적들의 표절 시비는 그의 사업 자체를 난항에 빠뜨리곤 했다. 

마침내 빚더미 위에 앉게 된 헨델은 사업 실패에 따른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뇌출혈까지 일으켜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하지만 온천에서의 요양을 통해 기적적으로 회복하고 이러한 재활의 기쁨을 담아 내고자 지천명(知天命)을 향해 가던 나이에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완성한 곡이 이른바 메시아이다. 단 24일만에 완성한 까닭에 헨델은 후일, 당시 “신께서 내게 찾아오셨다”는 심경을 주위에 전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자신을 최고의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뜨린 오페라 대신 ‘오라토리오’란 장르로 ‘메시아’를 선보였다는 것. 

참고로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와 같은 극(劇)이 없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성가대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다소 지루한 양식의 음악이다. 더불어 종교적 주제를 놓고 헨델이 선보인 ‘메시아’의 러닝 타임만 2시간 30분에 이르는 대작 중의 대작이었다. 지금의 영화 길이로도 일반적인 분량을 훌쩍 뛰어넘는 장편. 다행히 시대 분위기는 지금과 달리 2시간을 넘나드는 클래식 음악 공연을 즐기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모두 53곡에 이르는 대작들은 1부, ‘그리스도 탄생의 예언과 탄생,’ 2부, ‘수난과 속죄,’ 그리고 마지막 3부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나뉘어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초연 무대의 입장권은 매진됐고 여유 공간조차 없다는 이유로 여성들은 부피가 큰 옷을 입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남성들은 장검을 지닌 채 입장할 수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첫 공연에 참석했던 영국 국왕 조지 2세는 할렐루야가 터져 나오는 합창에서 놀라며 기립하는 바람에 장안에 또 하나의 화제를 안겨 주었다. 이후, ‘메시아’를 관람하는 영국 국왕은 누구든 할렐루야가 울려 퍼지는 3부의 합창 부분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종교 음악이기에 영화 음악에는 그다지 적합하지가 않아 그 동안 출연작을 찾지 못하던 ‘메시아’는 1997년 오우삼 감독의 러브콜 속에 마침내 헐리우드에 등극하는 감격을 맛보게 된다. 영화, ‘페이스 오프’의 도입부에서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캐스터(니콜라스 케이지 분)가 커다란 빌딩 안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부르는 대규모 합창단과 조우해 할렐루야를 함께 합창하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폭탄 설치를 마친 그는 헨델의 ‘메시아’를 조롱하며 자신의 기쁨을 할렐루야로 마음껏 표출한다.

바흐와 같은 해에 태어나 바흐가 죽은 지 9년 뒤인 1759년에 사망한 헨델은 74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하지만 지나친 다작으로 말년에는 손에 장애를 입은 가운데 시력마저 잃어버리고, 시력 회복을 위한 수술이 잘못되는 부작용으로 사망하고 만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헨델의 눈을 수술했던 의사가 바로 바흐의 시력을 수술했던 의사였다는 것. 영국까지 건너가 헨델의 눈을 수술할 정도였으면 당시의 안과 의사 가운데에서는 최고의 의술을 자랑했던 이였겠지만 그가 손을 덴 바흐와 헨델은 모두 후유증 속에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유능했던 만큼 사업 수완도 좋았고 또 적도 많았던 헨델은 평생 표절 의혹과 비난 속에 결코 녹녹치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런 헨델에게 영국 정부는 음악적 불모지였던 자국에 끼친 헨델의 공을 인정해 그의 영원한 안식처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마련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서양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어머니는 헨델이라고 외우기 바빴던 서양 음악사의 이면에는 이 같은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그럼, 다음에는 인류가 낳은 불세출의 천재, 모짜르트의 영화 음악과 그의 불꽃 같은 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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