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소위 명문대, 고려대가 노했다. 지난달 1, 2일 학과평가를 발표한 중앙일보에게 “마음도 받지 않겠다”고 일갈했다. 고려대는 지난 1월 삼성 총장 추천제에도 “마음만 받겠다”며 파격적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중앙일보를 상대로 한 대학순위평가 거부 운동은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점차 확산돼 서울권 내로라하는 대학들도 거부 운동에 동참했다. 사실 언론사 대학순위평가는 대학생들에게 와 닿는 평가가 아니다. 그저 대학의 대외적인 명성만 높아질 뿐, 순위가 높다고 언론사에서 지원금 한 푼이라도 쥐어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사 대학순위평가는 이미 여러 차례 비판받아 왔다. 광고와는 떼려면 뗄 수 없는 언론사가 대학을 평가한다는 것은 엄청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언론사는 입시를 목전에 둔 학생과 학부모에게 대학을 세세한 지표로 평가해 정보를 제공하고, 숨은 ‘좋은’ 대학을 발굴해 기존 대학 서열구조를 타파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기존 서열구조를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을 영화 별점 매기듯 순위 매겨 언론사가 정해둔 ‘대학순위평가 달’에 희대의 구경거리로 보도한다. 지성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이 1994년 중앙일보가 대학순위평가를 시작한 지난 21년 동안 언론사의 크나큰 재미위주의 ‘보도거리’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대학들은 전혀 기분나빠하는 내색이 없다. 오히려 대학들은 언론사 대학순위평가가 발표되면, 평가 자료를 분석해 어떻게 하면 언론사 입맛에 대학을 맞출지 고심한다. 우리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평가를 명문대 위상제고의 방법으로 철저히 활용하고 있다. 대학순위평가 대응 목표로 ‘대학평가를 통한 대학위상 제고 및 명문대학 달성’, ‘하락원인에 대한 대안 방법’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평가 지표별로 책임부서를 지정하고, 평가 인프라를 확충해 더더욱 언론사 입맛에 맞는 대학이 되기 위해 애쓴다. 왜 우리 대학이 진정 발전해가야 하는 방법은 논의하지 않고, 언론사 맞춤형 대학이 되려 할까. 이렇게 언론사 대학순위평가에 매달린다면 종국엔 학문은 뒷전이고 ‘왜 이 언론사 대학순위평가에서 이 부문이 이렇게 낮을까’만 연구하며 전전긍긍하는 대학이 될 것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격이다. 언론사는 이 부분을 이용한다. 조금이라도 더 신문에 학교 이름이 나야 독자들이 ‘이 대학은 신문에 나니 좋은 대학이구나’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 독자들을 이용하는 언론사들은 그야말로 언론의 사명을 잃은 언론이나 진배없다.

평가가 얼마나 공정한지, 투명한지도 의문이다. 자칫하면 그들이 보기 좋도록 왜곡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더구나 중앙일보 대학순위평가는 삼성 재단인 성균관대가 근 몇 년 동안 눈에 띄도록 좋은 평가를 받는다. 두산이 인수한 중앙대의 동반 상승도 눈여겨 볼 사안이다. 언론사 대학순위평가 발표를 전후해 대학의 광고가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 간의 경쟁을 부추겨 광고 수익을 챙기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언론사가 사적 이윤 추구를 위해 대학을 상품화했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언론사 대학순위평가가 대학을 몰락시키는 꼴이다. 대학순위평가에서는 대학의 목적인 새로운 지식 추구와 지적 성장이 배제된다. 언론사가 대학과 같이 죽을 게 아니라면 언론이 시작한 일, 언론이 끝내길 바란다. 연례행사처럼 21년 동안 이어져 온 대학순위평가를 중단하길 촉구한다. 독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마음만 받겠다. 각 대학이 가진 역사와 설립이념, 학문의 깊이를 무시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