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총학생회 “마음도 받지 않겠습니다” 지난달 22일,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고대공감대’가 공개한 중앙일보 대학순위평가 거부 운동 포스터.

지난 1월, 고려대 총학생회 ‘고대공감대’가 ‘삼성 총장 추천제’를 ‘마음만 받겠습니다’라며 거절했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총학생회의 파격적 행보였다. 이후 ‘고대공감대’는 또다시 ‘대형 언론사’ 중앙일보를 상대로 “대학순위평가, 마음도 받지 않겠습니다”라며 언론사 대학순위평가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고려대로부터 시작된 언론사 대학순위평가 거부 운동은 서울지역 대학들을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고려대에 이어 서울대, 경희대, 동국대, 한양대, 성공회대 등 4개 대학 총학생회가 중앙일보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사 대학순위평가를 함께 거부하고 행동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ㆍ외 주요 언론사와 더불어 세계평가기관에서도 ‘정밀한 지표’를 내세워 주관하는 ‘대학순위평가’는 단연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슈거리다. 특히나 입시를 앞둔 고3 학생이나 학부모는 언론사 대학순위평가가 발표되면 신문을 펼쳐들고 각 대학의 순위를 확인하는데 애를 쓴다. 대표적 세계대학순위평가에는 ▲상해교통대학순위평가(ARWU) ▲THE(Times Higher Education 세계대학평가) 등이 있다. 국내 대학순위평가는 1994년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2009년 조선일보, 2010년에는 경향신문이 가세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취ㆍ창업을 특화한 ‘청년드림 대학평가’를 실시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창간일에 맞춰 대학순위평가를 일례 행사처럼 보도할 정도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자사 대학순위평가 20주년을 맞아 ‘자축’하는 의미로 전국 4년제 100개 대학을 대상으로 한 대학순위평가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미 주요 일간지 언론사에는 ‘대학평가팀’이라는 취재팀이 따로 있을 정도로 언론사 대학순위평가는 으레 관습처럼 굳어져 왔다.

이렇듯 전문기관, 언론사에서 실시하는 대학순위평가는 일반인이나 대학생, 교수 등 사회 구성원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평소 대학순위평가를 챙겨 본다는 직장인 J씨는 “신문에서 실시하는 대학순위평가니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며 “발표된 대학 순위를 보고 신뢰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순위평가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대학순위평가가 과연 얼마나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본지에서 우리 대학 학생 100명을 상대로 ‘언론사 대학순위평가 신뢰도’를 설문조사 한 결과, 과반수인 82%가 언론사 대학순위평가가 없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언론사가 대학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가 74%로 압도적이었다.

언론사마다 ‘중구난방’ 지표설정
대학순위평가 지표는 기관 재량 하에 설정돼 어느 곳에서 평가를 진행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문제로 제기됐다. 이는 평가 기준에 따라 결과가 다르기 때문인데, 그 기준들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영리 목적으로 구성된 기관들이 얼마나 공정하게 객관성을 지니고 지표를 선정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각 기관마다 지표 비중도 다르다. 조선일보에서 실시하는 QS-WUR(세계대학순위평가)와 QS-AUR(아시아대학순위평가)는 학계평가에 각각 40%와 30%를, 중앙일보는 300점 만점 기준으로 60점(20%)을 할당한다. 동아일보는 ‘취업률’을 평가에 가장 큰 기준으로 삼았다. 이처럼 주요 언론3사가 실시하는 대학순위평가 지표가 상이하게 다른 탓에 평가 결과를 받아든 대학 관계자들은 각 언론사 평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언론사, 이윤 추구 위해 대학 상품화
일각에서는 ‘언론사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 대학을 상품화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대학순위평가 결과에 실적이 좌우되는 각 대학 부서 직원들은 “대학순위평가가 발표될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며 “취업이나 연구력에서 많은 노력을 해도 평가기관들 입맛대로 대학 줄을 세워 결과가 좋지 않으면 허탈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언론사 대학순위평가에 대한 반발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우리 대학 학생 65%는 ‘우리 대학에서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을 한다면 동의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 여기에 언론사 대학순위평가 발표 전후로 대학들이 지면광고를 집중시키는 등 언론사가 대학을 상대로 광고 수익을 챙긴다는 비판도 일었다. 대학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대학순위평가를 보도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학은 광고를 싣기 위해 많은 홍보비용을 제출할뿐더러, 국제화 평가 배점을 맞추기 위해 장학금을 주며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고, 거액을 들여 유명 외국 교수를 단기간이나마 초빙하려 열을 올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중앙일보, 편파평가 의혹도
대학을 후원하는 기업과 언론사 모기업이 같은 것도 문제가 된다. 대표적으로 성균관대와 중앙일보다. 이 둘은 삼성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성균관대를 후원해 중앙일보 측이 후하게 평가해 준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품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중앙일보에서 실시한 대학순위평가에서는 성균관대가 ‘SKY’(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를 제치고 종합대 1위를 차지했다. 평가가 발표되자 일각에서는 삼성이 후원하는 성균관대가 삼성가(家) 언론사인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노골적으로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성균관대에 밀려난 대학 학생들은 “올해와 지난해 중앙일보 대학순위평가는 너무 노골적으로 성균관대가 우위를 차지해 눈살이 찌푸려 질 정도였다”고 말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우스갯소리로 이번 고려대 총학생회의 중앙일보 대학순위평가 거부 운동이 최근 몇 년 간 성균관대가 재단인 삼성을 등에 업고 고려대를 앞섰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최씨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학순위평가가 학부모,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짐에 따라 신문사가 갖는 권력에 대학이 휘둘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언론사의 대학순위 평가가 대학을 상품화하고 이는 대학의 몰락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타 언론사는 언급하지 않고 유독 중앙일보를 타깃으로 한 거부 운동에 대해 최 회장은 “타 언론사에 비해 중앙일보가 가장 대학 서열화에 집중하고 있다”며 “중앙일보의 대학순위평가 영향력이 가장 큰 상황에서 서열화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대학의 본질과 가장 동떨어져 있다”고 답했다. 이어 최 회장은 “부등호로 대학의 서열을 표시하고, ‘○○대가 ○○대에게 뒤쳐졌다’는 식으로 자극적인 기사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 대학 학생 81%도 중앙일보가 언론사 대학순위평가 중 가장 영향력이 높다고 답했다. 이어 조선일보가 16%, 동아일보 2% 순이었다.

언론사 눈칫밥 먹는 대학들
언론사 대학순위평가에 비판은 2010년 ‘서울 8개 대학 교수협의회 연합회’에서 시작됐다. 연합회는 “언론사의 대학순위평가가 상당 수준으로 권력화 돼있다”며 “일부에서는 언론사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등에 업고 대학순위평가를 중요한 수익사업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대학이 언론의 눈치를 보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대학들이 언론사가 요구하는 수치들을 맞추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평가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협의회장은 지난해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방학이면 교수들은 할당된 논문량을 채워내느라 머리를 싸매고, 입학처 관계자들은 현지 학생 유치 경쟁에 나서는 촌극이 빚어진다”며 대학순위평가의 이면을 토로했다. 우리 대학 학생 73%도 언론사 대학순위평가가 대학의 서열화를 부추긴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