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페미니즘의 관한 인식이 세계적으로 상당히 고양됐고, 그 운동도 어느 정도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완숙기에 접어들지 못한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문제점을 짚어보고 한국 문화라는 틀 속에서 소화할 수 있는 진정한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1. 여성만을 위한 페미니즘  
2. 지나친 국제주의
3. 한국 문화속의 페미니즘

  최근 들어 페미니즘이 영화나 연극, 소설, 시, 텔레비젼 드라마 및 쇼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부문에 확산되고 있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여성의 사회참여’를 위한 각종 정책 및 입법활동이 이뤄져 왔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에서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의 제정까지 살펴보면, 불과 몇 년 사이에 여성정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부 ‘몰지각한 여자들’이나 ‘심심한 유한마담들’, 혹은 ‘남자로부터 상처받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동조한다는 편견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여성문제와 이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일종의 전성기(?)를 라고 보는 경향이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따라 다니는 비판적인 수식어들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것 또한 주지해야 한다.

  페미니즘은 우선, 일부 여성의 해방과 인간화가 아닌 모든 인간의 해방과 인간화를 추구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남성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하고 남성에 대한 증오심을 조장한다’고 비판받고 있다. 둘째로 서구 사회에서 백인여성들이 경험한 성차별의 문제가 한국사회의 여성들도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민족과 인종에 따른 ‘다름’을 무시하는 ‘서구 중심적’인 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왜 이런 비판이 제기됐으며, 한국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남성에 대한 증오심을 조장시켜 남녀간의 대립을 유도한다는 비판은 급진주의 여성해방 이론에 대한 곡해와 와전에 근거한다. 급진주의 여성해방이론은 가장 은밀한 사적영역으로 일컬어지는 ‘성’(sexuality)의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부각시켜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에 지대한 기여를 해왔다. 그런 이들이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들만의 공동체 및 문화를 강조하는 ‘분리주의’와 여성의 모성과 여성성이 남성의 폭력성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여성성에 대한 찬양’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언뜻 보면 페미니즘이 남성을 배제, 평가절하 및 적대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급진주의 여성해방이론에서 수용할 수 있는 많은 범주의 이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남녀 대립 구도’를 강조하여 분리주의를 조장한다는 곡해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의 급진주의 여성해방이론은 주로 ‘성’문제와 관련돼 논의되고 있다.

  이를테면 ‘성폭력’ 및 ‘가정폭력’ 등의 성범죄와 ‘레즈비어니즘’ 및 ‘성해방’(free sex)과 관련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모든 남성을 가해자로 혹은 ‘짐승같은 존재’로 보는 것 같아 불쾌한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고, 후자의 경우는 “이러다가 세상이 망하는 것 아닌갚 라는 우려 때문에 페미니즘 전반에 걸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페미니즘 자체를 거부하고, 오히려 ‘남성해방운동’이나 ‘남성학’은 왜 존재하지 않는가를 반문한다. 그러나 남성학에의 필요성 제기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차별의 문제를 제기하려고 해도 지나칠 정도의 신중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문제를 여성에 의해서만 해결하는 것’으로 함의하지 않고 남성들을 이해시키려는 끝없는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서구 백인여성들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전 세계의 모든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보편적인 현상처럼 인식하고, 또 이를 우리 상황에 적용하여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 또한 강도높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인종, 민족의 특성과 그 사회구조에 따라 여성문제가 나타나는 방식과 체험의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해 왔다는 비판을 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흑인여성운동, 레즈비언 여성운동, 소수인종 여성운동, 제3세계 여성운동, 빈민 여성운동 등의 다양한 이론화와 운동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1960년대 미국과 유럽의 중산층 백인여성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연구되었던 한계를 인정하고, 각국의 경험과 역사성을 토대로 그 나라 여성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하려는 페미니즘의 발전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페미니즘 경향을 무조건적인 ‘서구적 페미니즘’의 거부와 한국적 전통과 가치관에 적합한 페미니즘으로 몰아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한국적인 전통의 지나친 미화는 모성이데올로기의 강조와 이중적 성윤리, 친족제도와 혈연중심주의의 맹점까지 간과할 수 있다. 한 예로 다른 나라의 ‘사회적 양육제도’가 가지는 많은 장점들을 적극적인 노력없이 한국적 상황의 한계 때문에 사장할 수는 없다. 특히 전통적인 가부장제 가족제도하에서 여성들이 경험했던 억압이 불과 반세기만에 사라질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족내 여성경험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적 페미니즘이 안고 있는 모순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다른 나라의 남성들은 수긍하기 힘든 ‘남아선호 사상과 이로 인한 낙태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전통적 가치관과 제도에서 기인한 문제이므로 지금 여성계가 요구하고 있는 친족제도의 평등화(양계제)와 호주제 폐지 주장은 서구적인 것인가? 제사풍습 때문에 아들을 선호한다는 분석하에 제사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이럴 경우 대부분 페미니즘이 가족의 화합을 저해하고, 가족간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적 페미니즘’은 보편적인 성차별과 한국상황에서 수용되어온 성차별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위의 두가지 비판에 대한 해결책 모색과 더불어 앞으로 페미니즘이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돼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상황에서 페미니즘은 한국적 가치관과 전통에 대한 치밀한 연구작업과 한국내 성차별의 구체적인 현실파악을 토대로하여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현재의 여성차별의 극복을 위해서는 다양한 계층과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삶을 더욱 철저하게 읽어내고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장기적인 전망하에 우리 상황에 적합한 실천전략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위의 두가지 비판들을 적절하게 수용하여, 대중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파급력과 실행력을 갖춘 시민운동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거품처럼 부풀어, 진위를 판별할 수 없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연구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여성이 ‘최후의 식민지’로 남아있는 한, 또한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으로 대체될 정도로 남녀평등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변화는 전체 구성원의 열망과 실천없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여성해방과 인간해방’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끊임없는 설득과 실천작업들이 이뤄져야만 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갈망하는 여성해방과 인간해방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아직도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 박홍주(연세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