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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과 이지쿨 호수고태규 교수의 실크로드 문명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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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31  14: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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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 배델고개와 현장법사
이지쿨 호수와 천산을 보기 위해 낡은 버스를 타고 나린에서 카라콜(프르제발스키)로 갔다. 여기 카라콜은 중국 동파미르에 있는 카라콜 호수가 아니라, 이지쿨 호수 동쪽 끝에 있는 다른 도시를 말한다. ‘마다노르(MADANOR)호텔’ 객실(1,000솜 - 약 2만 원) 창가에서 눈 덮인 천산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중국 신장 투르판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천산이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천산 너머는 중국 신장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이다. 그러니까 우르무치와 쿠차 사이에 있는 바인부르크 초원 쯤 될 것이다. 바로 6-8세기에 용맹한 유목기마부대로 몽골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중국 서북 초원지대를 지배하면서 중국의 왕조들을 괴롭혔던 돌궐족의 무대였다. 기원전 4세기경부터 서기 5세기까지는 ‘초원의 왕자’ 흉노족이 지배했던 땅이다. 

<대당서역기>의 주인공 현장법사도 630년 초에 인도로 가는 길에 천산을넘어 이지쿨 호수를 지나게 된다. 스님은 인도로 가는 길까지의 안전을 위해 당시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서돌궐의 카간(可汗: 왕)인 통엽호(統葉護, 618-630)를 이지쿨 호수 서쪽에 있는 소엽성(素葉城: 현재 토크막)에서 만났다. 불교에 호의적이었던 통엽호는 당시 남쪽으로 가필시국(迦畢試國: 현재 아프가니스탄 카불 동부 지역)까지 지배하고 있어서 인도로 가는 현장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이때 현장은 천산 동쪽에 있는 발록가국(跋祿迦國, 현재 신장 아커수)를 출발하여 천산의 베델고개(해발 4,284m)를 넘어 이지쿨 호수에 이르는 400리(약 160km) 길을 죽음을 무릅쓰고 걸었다. 현장은 <자은전>에서 이 고개를 넘는데 7일이나 걸렸고, 동행인 중 14명이 얼어 죽었으며, 데리고 간 가축들의 피해는 더 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산에 있는 이 고개가 얼마나 험한지 암시해주는 대목이다. 나는 창가에 서서 ‘저 산 어디로 스님이 넘어왔을까’ 생각하며 한참이나 눈 덮인 천산을 바라보았다.
 
프르제발스키 박물관            
일요일마다 열리는 가축시장에 들렀다가 프르제발스키 박물관으로 갔다. 내가 키르기스스탄 동북쪽 구석에 있는 카라콜까지 온 것은 이 박물관 때문이다. ‘실크로드의 악마들’에서 읽은 이 러시아 탐험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Nikolai Przewalski, 1839-1888)는1869년부터 1883년 사이에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를 탐험했으며, 몽골 초원에서 야생말인 ‘프르제발스키말’을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으로 유명하다. 작은 박물관치고 정말 내용이 알찬 전문 박물관이다. 탐험가로서, 지리학자로서 , 군인으로서 그의 일생을 체계적으로 잘 꾸며 놓았다. 오쉬에 있는 키르기스스탄 역사박물관보다 훨씬 나은 거 같다. 그만큼 그의 업적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50년 동안 살면서 저렇게 알차게 인생을 살기도 힘들 것이다. 박물관에서 더 들어가면 그의 기념탑이 나온다. 바로 옆에 무덤도 있다. 이지쿨호수가 바로 앞이다. 그는 중국 신장지역에서 마지막 탐험을 마치고 돌아올 때 현장이 그랬던 것처럼 베델고개를 넘어서 이지쿨 호숫가에 도착했다. 그는 이 호수와 천산을 사랑하여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여생을 살다가 죽었다. 실크로드 탐험가의 인생을 이렇게라도 기념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꽃을 사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이지쿨 호수와 키르시스 결혼식
그동안 그렇게 보고 싶었던 이지쿨 호숫가에 섰다. 호숫가 마을은 한적했다. 여기는 이지쿨 호수의 동쪽 끝자락이다. 북쪽으로는 알라투산맥이 보이고, 동남쪽으로는 천산산맥이 둘러싸고 있다. 호숫가에는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고, 러시아 시대에 사용했던 화물용 기중기 두 대가 폐허처럼 휑하니 서있다. 여기도 가을이 한창이어서 나무들이 노랗게 빨갛게 저마다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바람은 신선하고 하늘은 맑고 푸르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과 빨갛게 익은 이름 모를 열매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시원하면서도 싸늘한 바람, 신선한 공기, 뭉게구름에 싸인 먼 산들,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풀만 뜯어먹는 말들, 나무 그늘에서 깔깔대며 노는 천진한 아이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이지쿨 호수와 천산의 가을 풍경을 만들고 있다. 

어제 나린을 출발하여 호수 서쪽 끝 도시인 발릭키(Balykchy)와 북동쪽 도시 튭(Tup)을 경유하여 카라쿨에 올 때도 버스 안에서 멀리서 호수를 보았었다. 도로 남쪽으로 폭이 수백 미터 쯤 되는 초원이 보이고, 그 너머로 검푸른 호수가 보였다. 그 뒤로 멀리 눈 덮인 천산이 병풍처럼 호수를 둘러싸고 있고, 그 설산의 정상에서는 하얀 뭉게구름이 하얀 목화솜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다. 이런 곳이 샹그릴라가 아니면 어디가 샹그릴라일까? 러시아나 중국이 이런 곳을 포기한 것이 신기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도로 북쪽으로는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이루는 알라투 산맥이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버스는 호수 북쪽을 따라가는 A363번 도로를 따라 카라콜까지 내달렸다. 호숫가를 따라 수많은 도시와 작은 마을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초원에는 말과 소, 노새와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호텔 부근에 있는 ‘자리나’라는 카페(식당)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뜻밖에 횡재를 했다. 어떤 청춘 남녀의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식사가 끝나자 신랑신부가 전통 복장을 멋지게 입고 나와서 몇 가지 게임을 하고, 결혼 선물을 전달하고, 그 다음에는 춤추고 노래하며 모두 신나게 놀았다. 처음 보는 키르기스 결혼식 피로연이었다. 배경 노래는 모두 팝송이나 현대 키르시스 대중가요였다. 내가 듣고 싶었던 전통 음악은 없었다. 

친척들이나 친구들의 행색을 보니 유목민들 같았다. 얼굴이 모두 빨갛게 익어 구릿빛으로 건강하고 강인한 모습이었다. 서비스 하는 아가씨 한 명은 한국 사람과 정말 닮아서 깜짝 놀랐다. 여기 사람들은 서쪽으로 우즈벡, 북쪽으로 카자흐, 남쪽으로 타지크, 동쪽으로 몽골과 위구르 사람들의 피가 섞여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모든 나라의 얼굴이 다 보이는 것이다. 인종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이런 다양한 인종이 모여 함께 사는 것도 바로 실크로드의 소중한 유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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