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곳에 공단이 있으리라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화려한 가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국내외의 유명한 가구점들은 모두 있는 것 같았다. 안에는 혼수를 장만하러 온 사람들 새로 가구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붐비었다. 그러나 가구공단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얼굴색이 다른 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갔다. 우리가 흔히 불법체류자라 부르는 이주 노동자였다. 그 뒤를 따라가 보니 가구 공단이 나타났다.

  그 곳에서는 극과 극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에는 달동네처럼 가파른 언덕에 후미진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뭔가를 갈고 자르는 기계 소리만 윙윙 거렸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훨씬 더 암울해 보였다. 김대중 정권 노동정책의 핵심기조인 고용유연화 정책은 정리해고를 통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비정규직 노동자 뿐만 아니라 이주 노동자의 수를 늘어나게 했다.

  이들은 대개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 취업해 중노동속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일을 한다. 그리고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생존의 위협까지 받아가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한국말을 좀 한다는 이주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다. “월급은 80만원 정도 받고 하루에 12시간씩 일해요” 그때 사장이 다가오자 갑자기 말을 바꿨다. “불편한 점 없어요. 너무 만족해요”라고 말하며 사장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울듯한 표정의 그 노동자는 더 이상 얘기할 수 없었다.

  가구를 만들 때 나오는 나무가루가 많아 공기가 매우 탁했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들은 마스크 하나 하고 있지 않았다. 공장내에 휴식공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무 가루로 뒤덮혀 있었고 이주 노동자들은 사장의 감시 속에서 일만 계속해야 했다. 퇴근 시간이 되자 몇몇 이주 노동자들이 거리를 다니기 시작했다. 한국에 온지 9년째라는 안젤로(가명)는 공단내의 현실을 많이 알고 있는 듯 했다.

  “3∼4개월 봉급이 안나오는 경우도 있고 1∼2개월은 기본이죠.” 그리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월급을 못 받은 채 그냥 다른 공장으로 옮긴다고 했다. “사장이 욕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죠. 그건 문제가 아니예요.”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한국말을 배울 때 욕부터 배운다는 얘기가 실감이 났다. 사장의 눈밖에 나면 불법체류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사장은 그 점을 약점으로 이주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쳐도 그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다. 그야말로 불법으로 일하기 때문에 산재 보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공단 내에서는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도 있고, 공기가 안 좋으니까 기관지병은 누구나 앓고 있죠.” 공장 내에는 어떤 안전장치도 돼있지 않았다. 그리고 사고가 났을 경우에도 사장을 잘 만나서 운이 좋아야 병원비라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해주는 동안에 안젤로는 계속 자신의 공장에는 그런 일이 없다면서 다른 공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예민한 얘기를 해줄 때는 혹시 사장이 알게 될까 두려워 눈치를 계속 살피는 것 같았다. 환율의 차이 때문에 80만원 정도만 받아도 만족하는 그들이기에 사장들은 이주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이었다. “월세방비 20만원과 한 달 밥값 15만원을 빼고 나머지 돈은 모두 고향으로 보내요.”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위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은 버린지 오래인 듯 했다. 돈을 빨리 모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그는 9년째이지만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오랜 한국에서 생활 끝에 그의 건강은 많이 안 좋은 듯했다. 하지만 그는 혹시나 자기 공장에 대한 얘기와 관련될까봐 자신은 건강하고 다친적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어떤 병을 지니고 있지 않을지라도 겉모습은 너무도 지쳐 보였다. 한국에서의 중노동에 많이 시달려 온 것이다. 손에는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들과 먼지가 베어있었다. 그는 방세와 밥값 외에는 모두 저금을 하기 때문에 적은 월급가지고 최소한의 의식주 생활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듯 했다. 말을 하는 내내 눈치를 살피고 어눌한 말투로 말을 했다. 정신적으로 많은 억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장의 폭언과 폭행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짤리지 않도록 묵묵히 일만해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점점 힘들고 어려운 일을 꺼려하는 이들이 늘고,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이주 노동자들이 늘어나게 됐다. 길거리나 전철에서도 쉽게 그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온 그들은 지금 인간답지 않은 인간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일은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외국인이고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다는 이유로 적은 월급을 받아야만 한다. 또 그 월급조차도 포기하고 지내야 할 때도 있다. “돈을 빨리 모아서 돌아가고 싶어요. 가족들도 너무 보고싶고요”라고 말하던 그의 눈빛이 너무나 지쳐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돈을 벌고자 부푼 꿈을 꾸며 왔던 그들의 꿈은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주 노동자이기 때문에 억압받는 그들의 인권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항상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우리들 인식 속에는 없애기 어려운 불평등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자본가와 노동자, 그 속에서도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분류되고 있는 세분화 된 계급이 사라지는 그날은 우리 마음속의 불평등이 없어지는 그날일 것이다.

 / 최진영 기자 wlsdud82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