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다. 가정의 달, 축제의 달, 만물이 생동하는 5월. 다시 5월이다. 한국사회에서 5월은 80년 광주민중항쟁을 겪으며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넘어 또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광주민중항쟁이 이 땅에서 생명력을 얻은지 21년이 됐다. 그 동안 5·18은 10년이라는 시간동안 군사독재하에서 민중이 일으킨 ‘사태’로 인식 돼왔다. 역사 속에서 계급을 타파하기 위한 혁명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보다는 불온한 세력에 의해 일어난 ‘폭동’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광주민중항쟁은 80년 5월18일 불온한 세력에 의한 그 날 하루의 반란이 아닌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을 끝으로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일 때 다시 야만적인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이 등장한 것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자 봉기였다. 우발적인 한 ‘사건, 사태’가 아닌 당대의 누적된 모순들이 낳은 민주화 투쟁의 결정판이었다. 광주민중항쟁 그 자체가 민중의 역사인 것이다.

  2001년 5월, 우리에게 광주 민중항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불과 인구 팔십만의 도시에 80년 5월 18일에 군 3개 여단, 2천 5백여명 이상의 공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됐었다. 그러나 민중들은 비록 잠시였지만 이러한 군세력을 밀어내고 해방구를 구축했었다. 노동자, 시민, 학생들로 구성된 도청 사수대는 결국 정권의 폭력으로 무너졌지만 80년 5월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도청으로 모여들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밥을 해 날랐으며, 서로의 상처를 치료했고, 총을 들었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방송국마저 불타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된 그 도시에서 우리는 민주화를 위해 똘똘 뭉친 공동체를 볼 수 있었고, 해방을 볼 수 있었고, 진정한 혁명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지금 광주의 모습은 어떠할까.

  지난 19일 5·18광주 순례단 ‘생동’과 함께 망월동 신묘역을 찾았다. 일렬로 잘 정돈된 묘앞에서 줄지어 형식적으로 고개 숙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광주 민중항쟁의 적자인 김대중 정권은 역사와의 화해를 이야기하며 수천명이 넘는 민중을 살해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면해줬다. 마치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게 된 당시의 조건들 즉, 자본축적의 위기를 민중들에게 폭력적으로 부담지웠던 착취의 모순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권력의 모독에 맞서 투쟁했고 죽임당한 열사들의 정신은 성역화된 묘지에 육신과 함께 묻힌 듯 했다. 하지만 과연 1980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며 죽어간 열사들의 바램대로 지금 우리는 인간답게 살고 있을까.

  우리는 지난 4월10일 대우자동차 폭력진압과 5월1일 전세계 노동자들의 투쟁과 단결을 도모해야 하는 노동절 날 또다시 광주에서 일어난 캐리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살인적인 폭력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구사대로 돌변해 두 눈 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참히 짓밟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는 캐리어 비정규직노동자의 말속에서 현재 자본과 정권은 이 땅의 민중들을 얼마나 계층화시키고 착취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2001년 광주는 더 이상 혁명의 도시가 아니었다. 광주순례단은 광주에서 ‘신자유주의 분쇄’,‘김대중 정권 퇴진’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대중 정권의 캐리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광주에서의 폭력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21년전과 마찬가지로 계속되고 있는 이러한 폭력을 단지 21년전의 폭력진압과 같이 민중들의 우발적 ‘사태’에 대한 정권의 탄압으로만 볼 수 있을까? 광주민중항쟁의 역사를 김대중 정권의 망월동 묘역 성역화에 맞춰 혁명정신도 그대로 박제해 버려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더 이상 기념일인 5·18을 기억해서는 안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현 정권의 개혁정책과 자본의 착취 속에서 민중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성역화된 망월동 묘역에 묻힌 열사들의 혁명정신을 계승하여 진정한 해방을 향해 나가는 것이 21년이 지난 광주민중항쟁의 의의를 바로 새길 수 있는 길일 것이다. 그래야만 이 땅에서의 폭력은 더 이상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 신현주 기자 omgkin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