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경향신문 기획시리즈에서 ‘3포 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는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 청년층을 말한다. 그들이 포기 선언을 한 이유는 먹고 살기 어려운 지금의 사회 때문이다. 높아지는 실업률=취업난, 물가 상승=높은 집값, 비정규직 문제=불안정한 일자리 등 청년층이 당면한 문제는 당분간 그리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뒤이어 ‘5포 세대’도 나왔다. 3포는 기본이고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것이다. 이후 꿈과 희망마저 포기한 ‘7포 세대’, 건강과 외모도 포기한 ‘9포 세대’,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하는 ‘달관 세대’에 이르기까지 청년층을 칭하는 단어들을 보면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청년들이 포기하는 것이 늘어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사회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더 늘어나고 있다. 바로 스펙이다. 2002년 청년들이 뽑은 5대 스펙은 학벌ㆍ학점ㆍ토익ㆍ어학연수ㆍ자격증이다. 적어도 이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춰야지만 취업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여기에 봉사ㆍ인턴ㆍ수상실적을 더한 ‘8대 스펙’이라는 말이 관습처럼 굳어졌다. 쌓아도 쌓아도 끝이 없는 스펙. 이를 두고 만리장성 스펙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높아져 가는 취업 문턱에 청년들의 삶은 핍박해져 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취업 준비생은 63만 명. 여기에 공무원, 고시 등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경우 등을 포함하면 청년 실업자는 116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입시와의 싸움을 끝낸 고등학생은 어느덧 대학생이 됐고, 다시 취업과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몇몇 대학생들은 아예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취업준비에 몰두한다. 흔히 말해 ‘아싸’,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캠퍼스의 낭만 따위는 접어둔 지 오래, 현실에 닥친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며 지낸다. 사실 이는 이제 학생들에게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이 됐다. 주변에서 너무나 익숙히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세태를 보고 대한민국은 ‘헬 조선’이라며 자조 섞인 단어를 뱉기도 한다.

한국사회는 청년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원하고 있고, 청년들은 그 조건을 맞출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청년들에게 ‘열정’은 냉정한 이 사회가 따뜻해 보이려고 만든 하나의 단어에 불과하다. 좋은 대학교는 물론이고, 높은 토익점수도 기본이다. 또 자신의 노력을 표현할 수 있는 경험들도 중요하다. 이 또한 스펙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이젠 스펙이 되는 사회다.

앞만 보고 달려온 청년들은 “어른이 됐으니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종이접기 아저씨의 한 마디에도 쉽게 울컥했다. 지금 사회는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 한 번 해준 적이 있는가. 무언가를 요구하고 바라기만 할 뿐 그들을 기다려 준적은 없다. 더 포기할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 청년들은 가진 게 없다. 사실 필자도 이 청년층에 해당하기에 두려움이 앞선다. 앞으로 청년들은 얼마나 더 포기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