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리는 것보다 새로이 생겨나는 것들에 관심이 컸던 때가 있었다. 새로운 것은 늘 좋은 것이었고 새로이 생겨날 것을 기대하며 살았다. 안락한 아파트와 자동차, 카트로 가득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대형마트, 세계화와 정보화가 주는 환상과 선진국 진입에의 꿈. 사라져간 것들은 크게 아쉽기보다는 이따금 감수성을 깨우는 도구였고 현재를 더 뿌듯하게 해주는 비교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것이 더 이상 큰 만족을 주지 못하고 다가올 것도 그리 고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을 새로운 것이 달래주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는 것은 아픔이 되었다.

유토피아라고 느꼈던 아름다운 곡선의 중도 잔디밭, 나무가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의암호를 바라보던 고슴도치섬, 텔레토비 동산에 빙 둘러앉아 담소하던 학생들, 식당 아주머니들이 큰 대야에 닭갈비 재료를 버무리던 모습, 운동장 한 가득 한림 식구들이 모여 흥에 겨웠던 축제의 밤. 그리고 이런 이미지들로 에둘러 말하는 우아했던 춘천과 뿌듯했던 한림.

잃어버린 것은 어떤 것들이었나? 내버려두기엔 지금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여유롭고 인간적이고 흥겨운 것, 돈이 안 되는 것, 기계가 아닌 인간이게 하는 것들은 버티기 힘들었다. 천국에나 있어야 할 것인가 보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건 역부족이라는 느낌이 든다. 대신에 머지않아 잃어버리게 될 것을 생각해본다. 내 주변에 아직 남아있는 여유와 흥, 인간적인 것과 순진한 것, 강요된 것이 아니라 아직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평가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 남아있는지 주섬주섬 챙겨본다. 지키지 못해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훗날 잃어버린 것으로 아프게 회상하게 된다.우리가 무언가를 버릴 때에는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동반된다. 상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대의가 있다. 이 대의를 믿으며 우리는 익숙한 것들을 과감히 떠나보낸다. 근대화론으로 한국 사회의 오래된 것들이 사라졌다. 199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배경으로 돈과 경쟁력 담론이 많을 것을 파괴했다. 내가 춘천과 한림에서 잃어버린 것 역시 사라질 때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된 대의나 논리가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잃어버릴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은 우선 빼앗기지 않게 부둥켜안는 것이다. 다른 방법도 있다. 당연한 것인 듯 활개를 치는 논리에 도전하는 것이다. 당연하고 정상이라고 강요하는 논리를 꼼꼼히 따져보자. 그리고 나와 우리에게 적합한 논리를 관철시키자. 우리의 곳간에는 이미 많은 논리들이 준비되어 있다. 더 생산하지 말자, 덜 소비하자, 경쟁하지 말자, 사람이 우선이다, 자연과 공생하자. 경쟁력과 생존 논리에 묻힌 자유, 민주, 평등의 가치도 다시 주장하자. 새 학기가 모든 것을 유보해야 했던 고3 시절을 다시 평생 살라고 하는 극단의 사회, 미친 논리로부터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시간이 되길 바래본다.

/ 엄한진(사회ㆍ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