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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의 재미있는 미술 이야기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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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26  11: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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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미술의 신 지평을 연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원초적인 성질과 강렬한 붓 터치가 태고적 원시 미술의 거친 힘과 동물적인 정렬을 느끼게 한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아프리카 미술의 재발견으로 이어지며 검은 대륙의 예술 작품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사재기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진출처 네이버

역사상 가장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서양화는
피카소의 추상화, ‘아비뇽의 처녀들’
전통적인 미학에 도전하며 완전히 새로운 서양화 창조

 “미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미학에 관한 책으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작가 진중권. 그는 자신에게 대중적인 명성을 안겨 준 ‘미학 오디세이’에서 예술은 딱 꼬집어 말할 수 있는 본질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본질을 찾아 헤맸던 서양의 전통 미학이 본질주의적 오류에 빠져 있었다고 안내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예술이란 어떠한 특성이나 특징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기존의 시각이었던 데 반해, 현대 미학에서는 예술을 정의함에 있어 정답도 없고 또 정해진 길도 없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본다면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도 현대 미학적인 시각에서는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통 미학에 대한 현대적 도전은 예술가 가운데에서 누구로부터 시작됐을까요? 필자가 보기에 전통 미학에서 말하는 본질주의적 오류에 도전하며 예술, 특히 미술에는 “본질이 없다”라는 외침으로 세상을 뒤흔든 화가가 파블로 피카소입니다.



사실 피카소 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그의 추상화를 떠올립니다. 더불어서, 처음으로 피카소의 추상화를 접했을 당시 스스로의 입이나 주변에서 들은 말들도 대부분 기억하실 겁니다. “내가 그려도 이보다는 낫겠다”거나 “도대체 뭘 그린 거야?”라는 반응들이죠. 맞습니다. 적어도 그의 몇몇 그림을 놓고 보면 웬만한 사람들도 따라 그릴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서,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하게 될 경우 100명이면 100명 모두 다 이해하지를 못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늘날 가장 위대한 현대 예술가 가운데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피카소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인 천재 화가였습니다. 어느 정도로 뛰어난 그림 실력을 지니고 있었는지는 그림 교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피카소의 그림 능력을 보고 그림 그리기를 관두었다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피카소는 일반 화가가 석 달은 걸려야 완성할 수 있는 그림을 불과 3~4일 만에 완성했지요. 그리하여 그의 곁에서 아들의 그림 실력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결국 화가라는 자신의 직업을 포기합니다.

그런 피카소는 청운의 부푼 꿈을 안고 예술인들의 문화 수도인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갑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 보이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파리에 유학 온 그는 대중적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한 사진에 밀려 대중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회화의 슬픈 현실을 목도합니다. 극사실주의라는 정밀 묘사화까지 나오며 봐온 이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던 회화는 이제 피사체를 똑같이 옮겨 담는 사진에 밀려 그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술과 함께 등장한 복제 기술의 발달 또한 미술에 치명타를 가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집에서 사진과 포스터를 걸어놓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으니까요. 참고로, 피카소가 20대에 들어선 20세기 초는 발터 벤야민이라는 독일의 언어철학자이자 평론가가 기술 복제 시대의 문예 이론을 펼치며 전통적인 예술은 그 아우라에 힘겹게 의지해야 한다고 평한 시대였습니다. 참고로 아우라란 사물의 유일무이한 성격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분위기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다시 말해, 복제품이 아니라 진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벤야민은 아우라란 말로 표현했죠.

어쨌거나 피카소는 복제 기술의 출현에 따른 미술가 학살 시대에 이제는 사진이 흉내 낼 수 없는 묘사법으로 어떻게 그림을 그릴 것인가를 놓고 고민합니다. 그렇게 고뇌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피카소는 어느 날 우연히 들르게 된 민속박물관에서 아프리카 원시인들이 만든 조각상을 접하게 됩니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선과 강렬한 색깔, 더불어 익숙하지 않은 비대칭적 입체성에 크게 충격을 받은 그는 20세기의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이후, 아프리카의 가면들을 닥치는 대로 구하기 시작한 그는 수백, 수천 장의 소묘와 데생, 조각과 회화를 통해 혁명적인 회화를 창조해 내기에 이릅니다. 입체파의 효시, ‘아비뇽의 처녀들’이었죠.

그의 나이 26살인 1907년에 발표한 ‘아비뇽의 처녀들’은 미술계의 권위와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돼 엄청난 비판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원근법은 철저히 무시되었으며 피사체 또한 괴상하게 묘사됐기에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전통 미학적인 측면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존 버거라는 미술평론가는 이 그림이 미완성이라고 일침을 가했으며, 윌리엄 루빈이라는 미술사가는 아비뇽의 처녀들이 매독에 걸린 것 같다는 혹평까지 남겼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아비뇽의 처녀들’은 이후에 발표된 ‘세 명의 무희’, ‘어릿광대들’ 등과 함께 피카소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줍니다. 물론 피카소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그의 천재적인 영감과 함께 상상할 수 없는 노력도 숨겨져 있었습니다. 92세의 일기(一期)로 생을 마감한 그가 한평생 남긴 작품이 회화와 소묘만 16,000여 점에 조각 650여 점, 판화 2,000여 점 등 거의 20,000점에 가까웠으니까요.

대단히 부지런한 화가가 1년에 두 번씩 전시회를 연다고 가정하면 통상적으로 한 번의 전시회에 30점 안팎의 작품들을 선보이기에 10년이면 600점의 작품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쉬지 않고 50년 동안 전시회를 열어도 기껏해야 3,000점 안팎의 작품들을 만들 수밖에 없기에 피카소의 20,000점이라는 숫자가 어느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20,000여 점의 피카소 작품들이 스케치와 밑그림은 제외한 것이라고 하니 천재적 재능에 초인적인 열정까지 더해진 결과가 그를 20세기 미술계의 최고봉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에서 문제 하나. 20세기 미술의 지평을 연 ‘아비뇽의 처녀들’은 현재 어디에 소장돼 있을까요? 바로 지난번에 소개한 뉴욕의 모마 미술관에 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현대 미술 명작들을 죄다 소장한 곳이죠. 그럼, 다음 시간에는 서양 미술사상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두 번째 작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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