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최근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분노하고 있다. 일명 ‘옥시 사태’로 일컬어지는 이 사건으로, 기업의 잘못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큰 고통을 겪었을 때를 대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1일 참여연대 등 6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기업이 예상한 손해배상액을 초과하는 금액을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부과한다면 가해자는 ‘불법행위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후의 잠재적 불법행위는 억제ㆍ예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계와 새누리당은 “우리나라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배심제가 실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서 평가받던 긍정적인 장점이 그대로 발휘될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며 신중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현재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가해자의 행위가 고의ㆍ악의ㆍ반사회적 의도로 불법행위를 한 경우 피해자에게 입증된 재산상 손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의 배상을 하도록 한 제도다. 또한 무거운 배상금을 통해 불법행위가 반복되는 상황을 막고 다른 사람이나 기업 등이 유사한 부당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예방하기 위한 형벌적 성격을 띠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영ㆍ미권에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징벌적 손해보상제도는 1763년 영국에서 판례를 통해 인정한 것을 시작으로 본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해 현재까지 그 판례가 누적되고 있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민사재판에서 이루어지는 처벌제도이기 때문에 별도의 형사적 책임을 물어 이중 처벌이 가능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아닌 손해에 상응하는 액수만을 보상하게 하는 ‘전보적 손해배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은 ‘제한(制限)배상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손해배상의 범위가 제한적이다. 위의 두 배상제도가 맞물려 대한민국의 현행법상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고의ㆍ과실ㆍ책임능력ㆍ위법성ㆍ가해 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설령 배상을 받는다고 해도 현행법상 지급받는 보상금은 물가상승률이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적합한 보상금이라 보기 힘들다. 또한 승소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시간ㆍ물적 손실로 인한 손해비용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가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어 대다수의 법률 전문가들이 현행 손해배상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정비의 한 방편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징벌적 손해보상제도를 도입하자는 사람들은 대기업들의 불법행위를 억제하기에 현재의 보상제도가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징벌적 보상제도를 도입한다면 앞서 언급한 ‘가습기 사망 사건’과 같은 기업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충분히 억제할 기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 전반적인 여론도 징벌적 손해보상제도를 지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징벌적 손해보상제도에 대한 중소기업 인식조사’에 따르면 70%의 중소기업이 징벌적 배상제도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또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결과 국민 10명 중 9명이 법안 개정을 찬성하는 등 사회 전반적 인식이 현재의 법안은 처벌 수위가 부족하기 때문에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기에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는 영ㆍ미권에 없는 ‘과징금’이라는 행정 제재금이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징금은 행정부의 주관으로 일정한 행정상의 의무를 위반한 자에게 부과하는 금전적 제재로, 영ㆍ미권의 사법부가 주관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과징금이라는 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가 도입하는 것에는 과잉제재의 위험성이 따른다는 시각도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만큼 현재의 대한민국 법체계에 대하여 불만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법안을 새로 제정하기 이전 많은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입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법조계 관료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